[가자전쟁 1년] ②국경 없는 전쟁의 상처…"전으로 돌아가고파"
지난해 10월 7일 이후 무너진 가자지구·이스라엘의 일상
의료진으로서 압박·공격 뒤 트라우마 겪기도
- 정지윤 기자
더 나아지는 건 바라지도 않아요. 제가 바라는 건 남편이 석방되고 전쟁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서울=뉴스1) 정지윤 기자 =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지 1년이 지났다. 그사이 약 4만1689명이 죽고 9만6625명이 다쳤다. 휴전 협상은 제자리걸음에 머물고 있는 가운데 길어지는 전쟁으로 인해 주민들의 삶은 나날이 척박해졌다.
AFP통신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에서 구급대원으로 일하는 마하 와피(43)는 전쟁 이후 집을 떠나 대피소로 거처를 옮겼다. 와피는 "텐트에서 살면서 물을 길어오고, 가스를 가져오고, 불을 피우는 어려움을 감당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12월에는 남편 아니스가 체포됐다. 체포된 이후 남편은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홀로 남은 와피는 다섯 아이의 생계를 책임지며 가자지구까지 보살피게 됐다.
와피는 "구급대원으로 일하는 것을 정말, 정말 좋아한다"며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데에서 의미를 찾기 때문"이라고 화답했다. 와피는 "우리는 사람들에게 가서 '당신의 말을 듣고 있다'고 말한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공격이 이어지며 부상자는 날마다 늘어났다. 가자지구의 열악한 의료환경 속 의료진으로서 와피의 압박은 더욱 커졌다. 구급차 옆에 앉아 바닥에 묻은 피를 닦아내던 와피는 "이 모든 것이 일하는 여성에게 심리적 압박"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10월 7일 이전보다 더 나아지는 건 원하지도 않는다"며 "지금 내가 바라는 건 남편이 석방되고 전쟁 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라고 호소했다.
가자지구의 응용과학대학에서 인공지능과 데이터 과학을 공부하던 파레스 알 파라(19)는 칸 유니스에서 촉망받는 인재였다. 파라는 10월 7일 가자 전쟁이 발발하기 두 달 전 고등학교를 최고 성적으로 졸업했다.
파라는 "저는 많은 야망과 목표를 갖고 있었다"며 "언젠가는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항상 확신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쟁 발발 며칠 만에 대학 건물 일부가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무너졌다. 현재는 가족과 함께 칸 유니스를 떠나 임시 대피소에서 몇 달 동안 머무는 중이다. 그는 "모든 길이 닫힌 것 같다"며 "앞으로 충족해야 할 기본적인 욕구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스라엘군이 칸 유니스에서 잠시 철수한 사이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지만, 이어진 공격으로 집 벽이 무너지고 파라는 팔이 부러지는 상처를 입었다.
절친한 친구 아부 하산이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파라는 하산이 "항상 저를 돌봐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고 추억했다.
고통받는 건 가자지구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이전과 달라진 일상에 이스라엘 주민들도 전쟁 전의 평범한 생활을 갈망하는 모양새다.
니산 피어리(33)는 1년 전 10월 7일 이스라엘 남부 노바 음악 페스티벌에 하마스가 난입한 기억을 떠올렸다. 피어리는 이날 오전 6시 29분, 축제에 로켓이 떨어졌을 때 상황도 파악하지 못한 채 차를 타고 도망쳤다고 회상했다.
피어리는 이날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포장도로를 달렸다고 언급했다. 집에 도착하기까지 12시간이 걸렸다.
이날 이후에는 외로움과 슬픔, 상실감,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약혼한 파트너와 헤어졌으며, 운영 중이던 미용실 문을 닫았다. 피어리는 많은 트라우마 생존자가 경험하는 "위기의 순간과 초조함, 짜증과 슬픔을 겪었다"고 부연했다.
이스라엘군 예비역 대령 출신이자 다섯 아이의 아버지 에레즈 레게브는 가자지구 전쟁이 일어난 이후 농장과 채소 가게, 식당을 아내에게 맡기고 가자지구로 떠났다.
그는 "처음 4개월 동안에는 집에 가지도 못했다"며 "이후 휴가를 받아 집에 갈 때도 부하들이 싸우고 있어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레게브는 "결국 제가 하고 싶은 건 토마토 농장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라며 "아침에 아이와 함께 망고를 따고 싶다"고 소박한 소망을 전했다.
일부 이스라엘인들은 전쟁을 멈추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정권에 맞서기도 했다.
네타냐후를 반대하는 이스라엘 활동가들의 모임 '핑크 프런트'의 창립자 칼라닛 샤론(33)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상황이 더 나빠졌을 뿐"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핑크 프런트가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핑크 프런트는 이스라엘 정부에 인질 석방을 대가로 휴전 협상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시위에서 분홍색 의상을 입고 분홍색 깃발, 북을 휘두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나타내고 있다.
핑크 프런트는 하마스의 공격 이후 이스라엘 남부에서 피난을 떠난 이들에게 식량과 피난처를 제공했다. 샤론은 "사람들이 기분이 나아져 우리를 찾아왔다"며 "이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stopy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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