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중동 정세…'공격임박' 이란, 美요청에도 대화거부(종합)

WSJ "이란, 전면전 촉발해도 상관없다"…요르단 외무장관 중재노력도 수포로
이 안보회의선 '선제타격 거론' 전언…예루살렘 내각 지하벙커 6년만에 가동

3일(현지시간)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거점인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인근 도로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의 모습. 지난달 31일 피살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왼쪽부터)와 2020년 1월 피살된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 지난달 30일 피살된 헤즈볼라 고위 사령관 푸아드 슈크르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2024.08.03. ⓒ AFP=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조소영 기자 = 요동쳤던 중동 정세가 조용해졌다. 수도 한복판에서 동맹 세력의 지도자가 피살된 데 분노한 이란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군사적 보복을 천명하며 격랑에 빠졌던 지난주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란과 이스라엘 모두 물밑에선 전면전까지 염두에 두고 만반의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폭풍 전야'로 봐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미국의 요청에도 이란이 대화를 거부했으며, 이스라엘도 '공격받을 바엔 이란을 선제 타격하자'는 논의가 내부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4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전날 이란 측이 아랍권 외교관들에게 "이번 대응이 전쟁(전면전)을 촉발하더라도 상관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가자 전쟁의 역내 확전을 우려한 미국이 아랍국을 통해 보복을 만류하려 했지만, 이란이 이를 거부한 것이다. 미국은 지난달 30일 취임한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꾀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제력을 보여줄 경우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이란을 달랬지만, 이런 회유가 먹히지 않는 상황이라고 소식통들은 입을 모았다.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외무장관은 이날 이란을 찾아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알리 바게리 외무장관 대행을 만났다. 로이터·AFP 통신에 따르면 사파디 장관은 회담 직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번 이란 방문은 역내 긴장 고조에 대해 협의하고, 양국 간 차이를 극복하고자 허심탄회한 논의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시오니스트 정권(이스라엘)의 중대한 실수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보복 의지를 재차 드러냈다고 이란 국영방송은 보도했다. 사파디 장관도 화담에서 이스라엘이 "중대하고 뻔뻔한 행위를 했다"고 맞장구를 쳐줬지만, 이란의 마음을 누그러뜨리지는 못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오른쪽)이 4일(현지시간) 수도 테헤란을 방문한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외무장관과 만나고 있다. 2024.08.05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4일(현지시간) 예루살렘에서 열린 시오니즘 지도자 제프 자보틴스키의 추모식에 참석해 "이란이 우리를 겨냥한 공격땐 가자지구, 예멘, 베이루트 등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장거리 공습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2024.08.05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이란의 공격을 목전에 둔 이스라엘 지도부는 선제 타격을 검토했다고 한다. 이스라엘 매체 와이넷은 이날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네타냐후 총리가 전날 소집한 안보 내각 회의에서 이란과 이들의 대리 세력이 어떤 방식으로 보복할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며, 다양한 공격 옵션과 이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안보 당국 수장들은 이란이 보복을 그만두게 하는 일종의 '억제 조치'로서 이란을 선제 타격하는 방안을 거론했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다만 이 같은 선제 타격은 이스라엘이 '이란 공격이 임박했다'는 확실한 정보를 입수한 뒤 실행에 옮기며, 정확성을 담보하기 위해 미국이 확보한 정보와 비교하는 작업을 거칠 예정이다.

이스라엘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네타냐후 총리를 비롯한 내각 주요 인사들이 머물 지하 벙커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히브리어 매체인 왈라뉴스는 이날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예루살렘 지하 벙커에 구축된 지휘·통제소가 약 6년 만에 문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국방부 청사와 직통으로 연결되며 현존하는 무기의 공격을 대부분 견뎌낼 만큼 견고하다.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으로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발발했을 때도, 지난 4월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사상 처음 공습했을 때도 사용되지 않았던 벙커다. 가장 마지막으로 쓰였던 건 네타냐후 총리가 언론 유출을 막기 위해 고위급 안보 내각 회의를 비밀리에 소집했던 2018년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란 및 이란 대력 세력과의 전면전 위험이 고조되자 약 6년 만에 가동을 재개했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30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표적 공습해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고위 군사령관 푸아드 슈르크를 사살했다. 31일에는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이란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테헤란을 방문하던 도중 호텔 방에서 피살됐다.

이란은 하니예 피살을 이스라엘의 소행으로 보고 군사적 보복을 천명했다. 여기에 더해 사령관을 잃은 헤즈볼라도 전날 새벽 이스라엘 북부 지역에 로켓을 발사하며 전의를 불태웠고,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의 후티반군은 이스라엘로부터 호데이다항을 공습받은 지 보름 만인 이날 해상 상선 공격을 재개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예루살렘에서 열린 추모식에 참석해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할 경우 가자지구, 예멘, 베이루트 등 이란 대리세력을 겨냥한 장거리 공습이 가능하다고 경고했다.

4일(현지시간) 새벽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방공 시스템이 북부 갈릴리 지역에서 레바논 헤즈볼라가 발사한 로켓을 요격하고 있다. 2024.08.04.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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