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어진 중동 전운…英대사관 가족 레바논 철수·귀국 휴가객 인산인해

미국·프랑스·캐나다 등 자국민에 대피령…항공편 결항에 귀국 일정 앞당겨
헤즈볼라·하마스 정치·군사 지도자 피살…이란, 대이스라엘 보복 예고에 전운

4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 국제공항 대합실에서 여행객들이 쪽잠을 자는 모습. 최근 요동치는 중동 정세로 각국은 자국민들에게 레바논 탈출을 권고했다. 2024.08.04.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지도자의 피살을 계기로 이란이 이스라엘을 향한 보복을 예고하며 중동 전역의 전운이 최고조에 달하자 영국이 레바논 주재 대사관 직원 가족들을 철수시켰다. 휴가철을 맞아 레바논을 방문했던 여행객들도 속속 공항으로 집결하며 귀국을 서둘렀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영국 외교부는 4일(현지시간) 대변인을 통해 "레바논의 불안정한 안보 상황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수도 베이루트에 주재한 "대사관 직원들의 가족을 일시적으로 철수시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든 영국 국민들은 상업용 (항공편) 노선을 이용할 수 있는 지금, 당장 레바논을 떠나야 한다"고 경고했다.

레바논을 찾은 여행객들도 중동 정세가 요동치자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귀국 일정을 앞당겼다. 프랑스 국적의 여행객 조엘 스페르는 이날 베이루트 국제공항에서 만난 AFP 통신 기자에게 "여름 내내 레바논에서 지내고 다시 일하러 가고 싶었다"며 "떠나기 싫다"고 말했다.

그러나 각국 항공사들이 레바논을 오가는 항공편 운항을 취소하면서 귀국길에 오르는 것부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 유나이티드와 델타, 독일 루프트한자, 프랑스 에어프랑스 등의 항공사가 레바논 노선 운항을 잠정 중단했다. 스페르는 "항공편이 취소돼 다른 항공권을 예약해야만 했다"며 "여행 일정도 덩달아 짧게 조정했다"고 말했다.

전날 프랑스는 레바논과 이란을 방문 중인 자국민에게 귀국을 강력히 권고했고 미국은 지난 4일 "가능한 모든 항공권을 이용해" 레바논에서 탈출할 것을 촉구했다. 이 외에도 캐나다, 핀란드, 스웨덴 등이 레바논 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에 최근의 중동 정세를 이유로 여행 금지령을 발령했다. 특히 스웨덴은 레바논 대사관을 폐쇄하고 직원들을 인근 키프로스로 피신시켰다.

각국이 대피를 권고하면서 레바논의 관문, 베이루트 국제공항은 현재 레바논을 빠져나가려는 외국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고 이날 AFP는 전했다. 이들은 자국 항공사가 잇달아 결항하자 튀르키예 이스탄불, 요르단 암만, 이집트 카이로 등 인근국으로 향하는 항공편이라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모두 에티하드, 에미레이트 등 아랍계 항공사들이 운항하는 노선이다.

레바논 국민들도 전쟁이 임박했음을 직감하고 항공편을 알아보는 중이다. 베이루트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그레타 무카르젤은 AFP에 "레바논에 갇히기 전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고객들의 전화가 쇄도하지만, 무더기 결항으로 좌석을 찾기 어렵다"고 증언했다. 또한 "휴가철을 맞아 고향으로 방문하려던 해외 레바논 교민들도 예약을 취소했다"고 덧붙였다.

레바논이 이처럼 격랑에 휩싸인 건 이스라엘이 지난달 30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표적 공습해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고위 군사령관 푸아드 슈크르를 사살했기 때문이다. 같은 달 31일에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방문하던 도중 호텔 방에서 피살됐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소행으로 보고 군사적 보복을 천명했다. 여기에 더해 사령관을 잃은 헤즈볼라도 이스라엘을 향한 전의를 불태우는 모양새다. 이날 헤즈볼라의 거점인 베이루트 남부 교외 도로변에는 하니예와 슈크르의 초상이 그려진 대형 광고판에 "우리는 복수할 것"이란 글귀가 적혀 있었다고 AFP는 전했다.

3일(현지시간)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거점인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인근 도로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의 모습. 지난달 31일 피살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왼쪽부터)와 2020년 1월 피살된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 지난달 30일 피살된 헤즈볼라 고위 사령관 푸아드 슈크르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2024.08.03. ⓒ AFP=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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