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하마스 지도자로 칼리드 마슈알 유력…온건파[피플in포커스]
11년간 하마스 정치국장 지낸 베테랑…시리아 내전으로 이란과 불화
헌장속 '이스라엘 파괴' 문구 삭제…팔 자치정부와 관계 개선 모색
- 김성식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로켓에 피격돼 사망하자 칼리드 마슈알(68)이 그의 후임자로 유력해졌다.
마슈알은 이스라엘의 독극물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은 불사조 같은 인물인 데다 하니예에 앞서 하마스 정치국을 이끈 경험이 있어 작금의 혼란스러운 정세를 안정시킬 적임자란 평가를 받는다. 다만 대(對)이스라엘 투쟁에 있어 하마스 내부에선 비교적 온건한 입장을 취해왔던 터라 하니예 사망을 계기로 들끓는 강경파들의 지지를 얻는 것이 관건이다.
1일 로이터 통신은 하마스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마슈알이 하니예를 대신해 하마스 정치국장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하마스 정치국은 하마스를 이끄는 최고 권력 기관으로 하마스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슈라 위원회가 선출한다. 마슈알은 1996년 하마스 정치국장으로 선출돼 2017년 하니예가 후임자로 뽑힐 때까지 하마스를 이끌었다.
그는 정치국장이 된 이듬해 예루살렘 폭탄테러의 배후로 지목돼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이스라엘 해외정보기관 모사드 요원들에 의해 독금물 테러를 당했다. 이에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은 당장 해독제를 넘겨주지 않으면 암살범을 교수형 처하고 이스라엘과 체결한 평화 조약을 파기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스라엘은 요르단의 제안을 받아들여 해독제를 제공했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수감됐던 하마스 창립자 셰이크 아메드 야신도 모사드 요원 2명과 맞교환하는 조건으로 석방했다.
요르단에서 하마스 해외 모금책 역할을 하던 마슈알은 독극물 암살 미수 사건을 계기로 일약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의 영웅으로 부상했다. 이에 부담을 느낀 요르단은 1999년 자국 내 하마스 지부를 폐쇄하고 마슈알을 카타르로 추방했다. 카타르에 머물던 마슈알은 2001년 시리아로 거처를 옮겼다. 2004년 하마스의 정신적 지주였던 야신이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사망하자 사실상 최고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2011년 발발한 시리아 내전에서 수니파 반군을 지지하는 바람에 이듬해 시리아에서 쫓겨났다. 하마스와 같은 수니파 세력을 지원한 것이지만 이로 인해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지지했던 시아파 맹주 이란과의 사이가 껄끄러워졌다. 하마스는 반(反)서방·반이스라엘을 기치로 이란의 지원을 받아왔던 터라 마슈알은 시리아 전쟁의 패착으로 하마스 내부에서 정치적 입지가 줄어들었다.
마슈알은 2013년 슈라에서 재신임을 받긴 했지만 결국 2017년 5월 슈라 의결로 하니예에게 정치국장 자리를 넘김으로써 이란과의 관계를 봉합했다. 이는 하마스의 권력이 가자지구 외부에서 내부로 이전되는 효과도 낳았다. 마슈알은 1956년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태어나 쿠웨이트에서 자라는 등 생애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냈지만, 하니예는 태생지인 가자지구에서 정치 경력을 쌓았기 때문이다. 평화적인 권력 교체를 일궈낸 마슈알은 현재 카타르와 이집트 를 오가며 활동 중이다.
마슈알이 하마스 정치국장으로 복귀할 경우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접근 방법은 좀 더 유연해질 것으로 보인다. 마슈알은 2017년 5월 정치국장에서 퇴임하기 직전 1988년 제정한 하마스 헌장에 명시된 '이스라엘 파괴' 문구를 삭제하고,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전에 설정된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동예루살렘 지역을 기반으로 한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하겠다는 원칙을 발표한 바 있다.
요르단강에서 지중해로 이어지는 과거 팔레스타인 영토 전역을 국토로 삼겠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것으로 1990년대 전후 이스라엘에 대한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했던 강경 일변도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마슈알은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장과도 만나 양측간 관계를 개선하고자 노력했다. 이스라엘로부터 자치권을 부여받은 PA는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실효 지배해 왔지만 하마스의 2007년 총선 압승으로 가자지구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했다.
다만 하니예 암살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한 하마스 내부에선 대이스라엘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아 정치국장으로 선출되려면 이들을 잘 달래야 한다. 여기에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으로 발발한 가자 전쟁이 10개월째 계속되는 것도 마슈알이 이전과 같은 대이스라엘 유화 정책을 내놓기는 어려울 거란 분석에 힘을 싣는다. 실제로 마슈알은 중동 무슬림들을 향해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전쟁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seongskim@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