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명 사망' 하지 종교관광 참사…노년돼 떠난 길, 돌아오지 못했다
CNN, 올해 대규모 사망자 난 원인 분석
일반 비자 관광 상품, 사우디의 운영 미숙 등 지적
- 권영미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52도 폭염 속에서 치러진 이슬람 최대 종교행사 '하지(Haji·성지순례)'에서 올해는 1300명 넘는 순례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기후변화로 인해 유독 더워진 날씨도 원인이지만 고령의 순례자들이 비싼 하지 비자 대신 값이 약간 싼 일반 종교 관광 상품을 사서 사우디로 들어와야만 했던 것이 원인으로 분석됐다. 이들은 사우디에 와서도 직접 성스러운 도시로 들어오지 못하고 긴 사막길을 둘러 가야 했기에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25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81세의 이집트인 압델자헤르 압도 살렘은 2년 전 막내아들을 결혼시킨 후 마지막 소원으로 메카 순례를 결심했다. 무슬림이 일생에 한 번은 꼭 해야 하지만 돈이 많이 들고, 가장의 의무를 다하느라 가난한 무슬림은 나이가 들어서야 하지에 나설 형편이 된다.
아울러 고령인 그의 여행이 가능해진 것은 지난해부터 하지의 연령 제한을 없앴기 때문이다. 그간 사우디는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고령자의 순례를 제한해 왔는데 코로나로 2020년 이후 2년간 하지 순례가 이뤄지지 않은 것을 감안해 제한을 없앤 것이다.
하지만 부인과 함께 떠난 살렘은 이집트의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하지 사망자 1300여명 가운데 한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CNN에 따르면 이집트에서 허가받은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하지 패키지 비용은 약 4760달러(약 662만원)이며, 하지 비자 없이 하는 여행 비용은 약 3700달러였다. 약 1000달러의 차이에도 가난한 이집트인들은 싼 패키지를 골라야 했다. 최신 수치에 따르면 이집트의 평균 연간 가계 소득은 2019년 기준 1429달러다.
하지 비자가 있는 이들은 메카에 도착하는 과정은 물론 도착해서도 에어컨과 의료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 비자가 없는 일반 방문 비자 여행객들은 자신들의 비자로는 메카로의 입국이 금지되어 도보로 메카에 접근하기 위해 사막 길을 걸어야 했다.
살렘의 경우 이집트 여행사 대표로부터 일행을 수송할 버스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살렘의 아들에 따르면 아라파트 산을 오가는 교통편이 없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악마에게 돌을 던지는' 의식을 마치기 위해 약 8마일(약 13㎞) 떨어진 미나 쪽으로 걸어가야 했다. 그 과정에서 살렘의 아내는 지쳐서 중도에 포기했지만 살렘은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길을 계속 갔다. 그로부터 5일 후 그는 메카 병원의 사망자 명단에서 발견됐다.
약 180만명이 몰린 이번 하지에서 하지 비자 자체의 수가 적었던 것도 비극의 원인이었다. 각 국가는 전통적으로 무슬림 1000명당 하지 비자 1개를 취득하는데, 이는 0.1% 비율이다. 그러나 한 이집트 관리에 따르면, 무슬림 인구가 1억1000만 명에 달하는 이집트는 올해 5만 개의 하지 비자를 할당받았다. 이는 약 0.05%의 비율이었다.
하지 비자의 부족과 비싼 가격 때문에 일반 비자 종교 관광 상품이 생겨났다. 하지만 하지에 대한 인식이나 경험이 부족한 이들 여행사는 숙소나 교통편도 갖추지 못한 채 폭염 속에 여행객들을 내려주는 등 위험에 빠트렸다.
사우디 당국의 하지 진행상의 무능력, 의료진이나 기본 시설 부족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공식 투어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하루의 대부분을 뜨거운 열기 속에서 보내야 했기에 일부 순례자들은 하지의 열악한 인프라와 조직을 한탄했다. 한 목격자는 수백미터마다 흰색 천으로 덮인 시체가 누워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종교 관광의 경제적 잠재력을 인식한 사우디는 하지 순례자 수를 현재 200만 명 미만에서 2030년까지 500만 명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CNN은 전했다.
ky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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