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이스라엘 의사, 하마스 수장 '기구한 인연'… "20년 전 살려냈는데"
- 조윤형 기자
(서울=뉴스1) 조윤형 기자 = 20년 전 이스라엘(유대인) 의사에게 치료 받고 생명을 구한 팔레스타인 하마스(무슬림) 수장 신와르. 이때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얄궂은 운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6일(이하 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수장 야히아 신와르와 그의 목숨을 구했던 이스라엘인 의사 유발 비튼의 기구한 사연을 조명했다.
이날 이스라엘 치과의사인 비튼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20년 전 신와르가 저에게 '생명의 은인'이라고 하면서 제 전화번호까지 물어봤다"고 밝혔다.
비튼과 신와르, 두 사람에게 숨겨진 사연은 이렇다. 보도에 따르면 비튼은 2004년 당시 의대를 졸업하고 이스라엘 남부 베르셰바 교도소 의무실에서 8년 간 의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신와르는 이때 청년이었는데, 이스라엘에 협력한 것으로 의심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살해한 혐의로 1989년부터 해당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비튼은 "신와르는 당시 기도하기 위해 일어섰다가 쓰러지고는 했다"며 "의식이 들락날락하는 것 같았다. 가장 뚜렷한 징후는 신와르가 목 뒤쪽에 통증을 호소한 것이었다"라고 회상했다.
문제의 그날, 비튼은 의무실에서 혼수 상태로 실려온 신와르를 보며 다른 의료진과 함께 '뇌에 문제가 있다'라는 진단을 내렸다. 이후 신와르를 급히 병원으로 이송했고, 응급 수술을 집도해 신와르의 뇌농양을 제거했다.
신와르는 수술 이후 후속 조치를 위해 찾아온 비튼을 마주했다. 신와르는 무슬림인 경찰관을 향해 "비튼에게 생명의 빚을 졌다"라며 감사를 표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와 관련 비튼은 "그때 신와르가 수술을 받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농양이) 터졌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의사와 환자인 동시에 서로를 통해 정보를 캐내야 하는 '적'으로서 복잡한 관계를 이어나갔다는 전언이다. 실제로 신와르는 이전까지 이스라엘 교도소 당국자들과 거의 대화를 나눈 적이 없지만, 비튼과는 감방 뒤편에서 정기적으로 만나 주로 차를 마시며 이야기했다고 전해졌다.
다만 비튼은 자신이 누구를 상대하고 있는지에 대해 환상에 빠져 있지는 않았다. 비튼이 편집을 도왔다고 알려진 교도소 평가서에 따르면 신와르는 잔인하고 교활하며 '군중을 태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권위 있는 사람으로 비춰진다.
이처럼 비튼은 "신와르와의 대화가 개인적이거나 감정적인 것은 아니었다"라며 "단지 하마스에 관한 내용뿐이었다"고 털어놨다.
2011년 신와르가 이스라엘 교도소에서 석방되면서 '적과의 대화' 또한 끊어졌다. 신와르는 석방되는 날 비튼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표시하며 전화번호를 물어봤지만, 비튼은 자신의 번호를 알려주진 않았다.
교도소 직원들이 외부에서 하마스 지도자들과 연락하는 게 금지돼있기 때문에 거절한 것. 그로부터 12년 뒤인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는 이스라엘 남부를 기습 공격했고, 그 중심에는 신와르가 있었다.
비튼의 조카인 아다르는 기습 공격 당시 하마스에 붙잡혀간 이스라엘 주민에 포함됐다. 비튼은 조카의 비보에 "애간장이 녹는 심정"이라며 "그때 내가 적인데도 신와르의 생명을 구했던 것처럼 신와르도 같은 방식으로 내 조카를 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뉴욕타임스가 가족으로부터 입수한 첩보에 따르면 기습 당시 부상을 입은 아다르는 가자지구로 끌려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숨진 것으로 보인다.
yoonzz@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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