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통령, 헬기 추락으로 사망…'격동의 시기'에 잇단 악재(종합2보)

외무장관 포함 탑승자 9명 전원 사망…'악천후'에 원인 무게
이스라엘 타격·히잡 시위에 국내외 불안 고조…부통령이 승계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이란 테헤란에서 TV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5.07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지윤 기자

(서울=뉴스1) 박재하 조소영 기자 =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헬기 추락 사고로 결국 20일(현지시간) 사망했다.

이란의 실권자 아야톨라 알리 하마네이 최고지도자의 유력 후계자로 지목됐던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으로 국내외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이란이 초대형 악재를 겪게 된 셈이다.

특히 이란이 내부의 혼란을 어떻게 수습할지, 공석이 된 최고지도자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어떤 권력투쟁이 벌어질지 관심이 집중된다.

◇"헬기 탑승자 9명 전원 사망"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모흐센 만수리이란 행정 담당 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라이시 대통령이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한 이란 고위 당국자도 로이터에 라이시 대통령과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외무부 장관 등 탑승자 9명 전원이 이번 사고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이란 메흐르 통신도 "헬기 탑승자 전원이 순교했다"라며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19일(현지시간)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탑승한 헬기가 동아제르바이잔 주에서 열린 아라스 강의 기즈 갈라시 댐 준공식에 참석을 한 뒤 이륙을 하고 있다. 라이시 대통령은 이날 귀환 중 헬기 추락 사고로 실종됐다. 2024.05.20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앞서 라이시 대통령은 전날 오전 아제르바이잔과 이란 국경에 양국이 공동 건설한 키즈-칼라시 댐 준공식에 참석한 후 헬기로 이동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헬리콥터는 동아제르바이잔주(州)의 주도 타브리즈에서 약 100㎞ 떨어진 타빌이라는 산악 마을 인근 삼림 지대에 추락했다.

수색 대원들은 험한 산세, 강추위 그리고 자욱한 안개로 수색에 난항을 겪었으며 헬기 탑승자들의 생사는 사고 발생 12시간 가까이 지나도록 확인되지 않기도 했다.

이후 튀르키예에서 파견된 드론이 잔해의 열원을 확인했고 해당 위치에 구조대가 급히 파견됐지만 결국 라이시 대통령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사고를 당한 헬기는 추락으로 완전히 불에 탔으며, 이란 국영방송 공개한 사고 현장 동영상에는 헬기 기체가 박살 난 채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모습이 담겼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동아제르바이잔 주에서 열린 아라스 강의 기즈 갈라시 댐 준공식에 참석을 한 뒤 헬기를 타고 있다. 라이시 대통령은 이날 귀환 중 헬기 추락 사고로 실종됐다. 2024.05.20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추락 원인으로 '악천후'에 무게

추락 원인으로는 악천후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헬기 전문가인 폴 비버는 알자지라에 "구름과 안개, 낮은 기온 등이 라이시 대통령의 헬기 추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특히 그는 비행기와 달리 헬기는 궂은 날씨에 비행하기가 어렵다며 "헬리콥터에는 그런 사치가 없다"라고 진단했다.

아마드 바히디 이란 내무부 장관도 헬기가 "악천후와 안개로 인해 경착륙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사고 원인으로 궂은 날씨를 지목했다.

다만 이란 당국은 사고 원인과 관련해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헬기 추락이 외부 요인으로 일어났다는 '배후설'이 제기됐다.

특히 가자지구 전쟁은 물론 오랫동안 이란과 척을 져온 이스라엘이 이번 사건에 연루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또 다른 음모론으로는 차기 최고지도자 자리를 둘러싼 암투에서 비롯된 '사고사로 위장된 사건'이라는 주장도 있다.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헬기 추락 사고로 결국 사망했다. 20일 로이터통신은 이란 당국자를 인용해 라이시 대통령과 그와 함께 헬기에 탑승한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외무부 장관 등 탑승자 9명 전원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 헬기는 이란 동아제르바이잔주(州)의 주도 타브리즈에서 약 100㎞ 떨어진 타빌이라는 산악 마을에 추락했으며, 짙은 안개로 시야가 제한돼 산의 봉우리에 충돌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양혜림 디자이너

◇'격동의 시기'에 설상가상으로 겹친 악재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 소식으로 이란은 국내외적으로 전례 없는 불안을 겪는 도중 또 다른 악재를 맞이하게 됐다.

그동안 이란은 지난 7개월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으로 인한 격랑의 중동 정세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왔다.

이 과정에서 이란은 대리 세력을 통해 전쟁에 개입해 왔으며 급기야 이스라엘과 서로 본토 공격을 주고받는 초유의 사태까지 겪었다.

이처럼 혼란한 중동 정세 속에서 이란 내부에서는 정부의 억압적인 정책과 경제 위기에 대한 불안도 커지고 있다.

라이시 대통령의 임기 도중 이란 당국은 2022년 이른바 '히잡 시위'를 외부 선동으로 규정하며 시위대를 유혈 진압했다.

아울러 이란은 수년간 지속된 미국 주도의 제재로 경제 침체를 겪으면서 통화 가치가 폭락하고 인플레이션율이 30%를 넘는 최악의 경제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10일 테헤란 한 투표소에서 총선 결선투표를 한 후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2024.05.10 ⓒ AFP=뉴스1 ⓒ News1 정지윤기자

◇부통령 승계 후 50일 이내 새 대통령 선출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으로 이란 대통령직은 헌법에 따라 제1부통령이 임시 대통령을 맡게 된다.

현재 제1부통령은 모하마드 모크베르이며, 그는 하메네이의 승인을 거쳐 임시직을 승계한다.

이후 50일 이내 대통령 선거를 통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지만, 사실상 거의 모든 실권을 가진 최고지도자가 대통령을 택하게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으로 이란의 국내와 대외 정책이 바뀔 확률은 낮지만, 최고지도자 승계를 둘러싼 권력투쟁이 전개될 전망이다.

jaeha6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