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휴전없이 라마단 오늘 시작…중동 긴장 고조
초승달 관측한 사우디·UAE 11일 개시…이슬람 '5대 기둥'·일출~일몰 금식
휴전 불발에 가자지구 기아 위기 심각…이스라엘, 알아크사 주변 경찰 배치
- 김성식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이슬람 금식성월인 라마단이 11일(현지시간) 시작됐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선 한때 라마단을 앞두고 휴전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될 것이란 기대를 모았으나 인질 석방 조건을 두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끝내 불발됐다.
굶주림에 처한 가자지구 주민들은 침울한 분위기 속에 라마단을 맞게 됐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알아크사 사원에 방문하는 이슬람 참배객 규모를 예년과 같이 허용하면서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보안을 대폭 강화했다.
로이터·AFP 통신에 따르면 중동 주요국에서 라마단 개시일은 이날로 확정됐다. 이슬람 최대 성지 메카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대법원은 전날 국영 SPA 통신을 통해 이날을 올해 라마단 개시일로 선포했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카타르도 라마단이 이날 시작된다고 발표했다.
다만 이란과 모로코, 리비아는 오는 12일을 라마단의 시작으로 잡았다. 이처럼 라마단 개시일이 상이한 이유는 초승달을 반드시 육안으로 관측해야 하기 때문이다. 라마단의 초승달이 확인되면 그 다음날부터 금식을 시작하고 한달 뒤 새 초승달이 떠오르면 이를 종료하는 식이다.
이란 에스테그랄 천문대는 전날 라마단의 초승달을 관측할 수 없었다며 개시일을 12일로 정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일부 천문대에서도 흐린 날씨로 인해 초승달 확인이 지연됐으나 수도 리야드의 알마즈마대 천문대를 통해 초승달이 관측됨에 따라 개시일을 최종 확정했다.
라마단은 △신앙고백 △기도 △자선 △메카순례와 함께 이슬람의 '5개 기둥'을 이룰 정도로 중요하다. 오는 9일까지(잠정) 이어지는 라마단 기간 이슬람교도들은 일출부터 일몰까지 먹거나 마시는 행위를 일체 중단하며 금욕을 수행한다. 창시자 무함마드가 코란의 계시를 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밤에는 이웃·친지들과 함께 저녁 식사(이프타르)를 한 뒤 사원에 모여 기도를 드린다.
주민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인 팔레스타인 주민들도 이날부로 라마단을 맞이할 채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스라엘·하마스 간 휴전이 물 건너가면서 교전이 계속되는 탓에 좀처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분위기다. 230만 가자지구 인구 중 절반가량이 피란 온 최남단 도시 라파의 참상이 특히 심각하다.
비닐 천막에서 노숙하며 구호 식량에 의존하는 피란민들이 워낙 많은 데다 가자지구 중·북부 지방을 점령한 이스라엘군이 하마스 섬멸을 목적으로 지난달부터 라파 진격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가자지구 보건당국은 전날 라파 인근 해안마을 알마와시에서 이스라엘군이 피란민 천막촌을 공격해 13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라파에 머물고 있는 다섯 아이의 엄마 마하는 로이터에 "5개월째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있어 라마단을 전혀 준비하지 못했다"면서 "평소라면 집안에 장식도 하고 이프타르용 음식을 미리 냉장고에 채워 넣었을 텐데 올해는 그렇지 못했다"며 "통조림과 쌀만 조금 있고 대부분의 식료품은 상상조차 불가능한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의 필립 라자리니 집행위원장은 소셜미디어 엑스(X)에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휴전을 개시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지만, 현재 가자지구에선 극심한 기아가 확산되고 피란이 계속되며 라파를 상대로 한 군사작전 위협이 이어짐에 따라 공포와 불안이 만연해 있다"고 우려했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서도 라마단을 맞는 활기 대신 암울함만이 감지됐다. 서안지구 지도자인 아마르 사이더는 로이터에 가자지구의 "아이들과 노인들, 순교자들의 피를 기리기 위해 올해에는 장식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다른 중동국 주민들도 비슷한 심정이다. 리야드의 한 쇼핑몰에서 AFP와 만난 50대 남성은 "가자지구는 기아에 시달리는데 고기와 닭고기를 사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라마단을 계기로 이슬람교도들의 결속이 더욱 강화되자 가자지구 군사작전을 강행하는 이스라엘은 잔뜩 경계하는 분위기다. 지난 4일 강경파 이타마르 벤그리브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은 예루살렘 알아크사 사원 참배객 규모를 제한할 것을 주장했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튿날 라마단 치안 대책 회의에서 '신앙의 자유'를 거론하며 이번 라마단 기간에도 예년과 비슷한 규모의 참배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예루살렘 동쪽 구시가지 언덕에 있는 알아크사는 무함마드가 승천한 것으로 알려져 라마단 기간 매일 수만명의 이슬람교도들이 방문한다. 성전산(통곡의 벽)이라고도 불리는 이 언덕은 솔로몬왕이 지은 성전이 있던 곳으로 전해져 유대인들에게도 성스러운 장소다. 1967년 3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강제로 병합한 이래 알아크사 사원을 둘러싼 양측의 충돌은 유혈사태로 이어지기도 했다.
2021년 5월 라마단 기간 이스라엘 군경이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피신한 알아크사 사원에 진입하자 분노한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을 발사한 게 대표적이다. 이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공습하며 맞대응에 나섰고 양측의 교전은 10일간 계속됐다. 또한 이번 가자지구 군사작전의 원인이 된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작전의 이름도 '알아크사 홍수'였다.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는 지난달 28일 예루살렘과 서안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상대로 올해 라마단 기간 알아크사 사원으로의 행진을 촉구했다. 이에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수천명의 경찰 병력을 배치한 상태다. 이스라엘 경찰은 전날 성명을 통해 "성전산에서 안전하게 라마단 기도를 올릴 수 있도록 행동하겠다"며 "보안과 안전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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