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휴전 협상 또 빈손 마무리…'라마단 전 휴전' 불발 위기

인질 명단 공개 두고 협상 제동…중재국 설득 진땀
라마단 기간 충돌 가능성에 협상 완전 결렬 우려도

3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 한 소녀가 아기를 안고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잿더미가 된 주택가 잔해 속을 걸어가고 있다. 맨발에 슬리퍼만 신은 소년의 발에도 짙은 회색 먼지가 묻었다. 2024.03.03/ ⓒ AFP=뉴스1 ⓒ News1 권진영 기자

(서울=뉴스1) 박재하 기자 = 이집트 카이로에서 사흘간 열린 가자지구 휴전 협상이 진전 없이 종료되면서 '라마단 휴전'이 불발될 위기에 놓였다.

이에 협상 중재를 맡은 미국과 카타르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측에 협상안 수용을 촉구하고 있지만 양측은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공전하는 모양새다.

6일(현지시간) AFP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지난 3일부터 카이로에서 열린 가자지구 휴전 협상이 전날 소득 없이 마무리됐다.

하마스 측은 대표단을 보내 협상에 나섰지만 이스라엘은 그동안 요구한 석방 인질 명단 등을 하마스가 보내지 않았다며 협상 참여를 거부했다.

이에 미국은 하마스에 명단 제출을 압박하며 오는 10일 시작되는 이슬람 금식성월인 라마단 이전에 협상을 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스라엘군이 4일(현지시간) 가자지구 국경 인근에서 군사작전을 준비 중인 모습. 2024.03.04. ⓒ AFP=뉴스1 ⓒ News1 정윤영 기자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스라엘이 전향적인 협상안을 내놓았다"라며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하마스의 몫이다"라며 하마스에 공을 돌렸다.

하지만 하마스는 충분히 유연성을 보인다며 오히려 이스라엘이 협상을 회피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도 휴전에 도달할 때까지 협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최초 6주간의 휴전을 대가로 100여명의 인질 중 40명을 풀어주고 이스라엘 교도소에 수감된 팔레스타인인 400명을 석방하는 협상안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철수와 영구적인 휴전 등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력하게 맞서는 상황이다.

협상이 공전하는 가운데 중재국들은 라마단 전까지 휴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이스라엘과 하마스를 설득하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미국을 방문한 이스라엘 국가 통합당 베니 간츠 대표와 회담하며 "인질 석방을 위해 휴전에 합의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카타르와 이집트 역시 하마스 측에 수차례 협상안을 제시하며 휴전 합의에 나서라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니 간츠 이스라엘 전시 내각 각료가 5일 (현지시간) 워싱턴 국무부에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만나기 위해 도착을 하고 있다. 2024. 3. 6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이처럼 중재국들이 라마단 전까지 휴전할 수 있도록 나서는 이유로는 라마단 기간 또다시 갈등이 폭발해 협상이 완전히 결렬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는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해 라마단 기간에 이슬람 3대 성지 중 하나인 동예루살렘 알아크사 사원으로 행진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실제로 알아크사 사원은 참배객이 증가하는 라마단 때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이 빚어졌는데, 하마스는 이번에도 충돌을 일으켜 세력을 과시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여론 악화를 노리고 있다고 NYT는 평가했다.

요컨대, 이스라엘이 알아크사 사원에서 성지순례 하는 무슬림을 탄압하는 장면을 연출해 국면을 전환하려는 것이다.

이스라엘 지도부의 내분도 협상을 어렵게 만든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간츠 대표의 미국 방문이 자신의 허가 없이 이뤄졌다고 격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간츠 대표는 네타냐후 총리의 정적으로, 그의 독단적인 휴전 논의는 전쟁을 통해 정권을 유지하려는 네타냐후 총리의 구상과 대척점에 있기 때문이다.

5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팔레스타인인 아동들이 그릇을 들고 음식을 나눠받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으로 가자지구 아동들은 심각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2024.03.05/ ⓒ AFP=뉴스1 ⓒ News1 권진영 기자

한편 이처럼 휴전 논의가 정체되면서 가자지구 내 인도적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쟁 장기화와 구호품 전달 지연으로 가자지구에서 굶어 죽는 어린이가 속출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달 29일 가자지구에서는 굶주린 주민 수백명이 구호 트럭에 몰려들면서 이스라엘군이 이들을 향해 총격을 가해 115명이 숨지고 760명 이상이 다치는 참사가 벌어졌다.

또 이스라엘군의 공습이 계속되면서 가자지구에서 사망자 수는 3만717명으로 증가했다.

jaeha6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