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만 해도 가격이 2~3배…버킨백, 멋으로도 투자로도 산다
WSJ, 버킨백에 얽힌 경제학 분석
명품 가방 중 중고가 가장 높아…판매원·고객의 갑을 관계 역전
- 권영미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샀다가 5분 만에 팔았는데도 가격이 두배가 됐다. 버킨백 이야기다. 돈이라면 누구 못지않게 많은 사람이라도 버킨백을 사기 위해서는 매장 직원이 갑, 본인이 을이 되어야 한다. 색깔이 원하는 게 아니어도 일단 사야 한다. 리셀러에게 팔아 돈도 더 받고 나중에 원하는 색을 사면 되기 때문이다.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영국계 프랑스인 여배우이자 가수인 제인 버킨의 이름을 딴 버킨 백에 얽힌 경제학을 분석했다. 기본 검은 가죽 버킨 25의 가격은 에르메스 매장에서 세전 1만 1400달러(약 1600만 원)다. 구매자는 나가서 즉시 프리베 포터와 같은 온라인 명품 리셀러(재판매자)에게 현금 2만 3000달러를 주고 팔 수 있다. 그 후 프리베 포터는 인스타그램이나 라스베이거스 팝업 스토어에 이 제품을 올려 3만 2000달러에 판매한다. 분석가들이 추산한 버킨백의 원가는 1000달러다.
킴 카다시안이나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드는 등 버킨백이 귀한 몸이 된 데는 여러 가지가 작용했다. 1981년 제인 버킨과 당시 에르메스의 최고경영자(CEO)인 장 루이 뒤마의 비행기에서의 만남 같은 이야기도 이 가방에 매력을 더해줬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쇼핑객들이 매장에 들러 가방을 사는 게 가능했고 재판매가도 오늘날처럼 높지도 않았다. 2008~2009년 금융 위기 이후 금리가 낮아지면서 자금이 대체 자산으로 유입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버킨백이었다. 또한 경기가 어려운 시대에 시즌마다 새' 잇백'(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유명 브랜드 가방)을 사는 게 부담스러워진 고객들이 로고가 없는 디자인의 이 가방을 선호하게 됐다.
특이하게도 버킨백이 인기를 끌면서 고객과 매장 판매원의 갑을 위치가 역전됐다. 판매원이 누구에게 버킨백을 팔지 정하는 데 상당한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버킨백을 사기 위해 고객은 매장 다른 물건을 최소 1만 달러에서 20만 달러까지 샀다. 주로 사는 것은 에르메스의 스카프, 신발, 옷이었지만 부유층을 위해서는 주문형 스키, 스케이트보드, 낚시 장비를 제작하고 요트나 헬리콥터의 내부를 맞춤 제작해 주고 판 경우도 있었다. 고액의 미끼 상품을 살수록 희귀한 버킨백을 구입할 수 있었다. 집에서 구운 쿠키나 바클라바(튀르키예 후식)를 매장에 갖고 오는 것은 그나마 양호한 고객이었다.
에르메스는 새 상품의 판매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재판매자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재판매자를 쫓아내면 브랜드 자체의 이익에 해가 될까, 우려하고 있다. 이에 고안해 낸 것이 지난 1월에 버킨백 가격을 20% 인상하는 것이었다. 재판매상의 중간이윤을 줄이려는 의도였는데 재판매자들은 그 금액 그대로 고객에게 전가했다. 많이 싼값에 만듦으로써 중고를 사느니 새 제품을 사도록 만들 수도 있지만 버킨백의 독보적인 신비로움을 파괴할 수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버킨백에 투자하는 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 WSJ은 버킨백을 사기 위해선 다른 에르메스 제품을 사야 하기에 그다지 좋은 투자가 아닐 수 있다고 했다. 또 미술시장 조사업체 아트마켓리서치에 따르면 2010년 경매에서 구입한 버킨백은 오늘날 약 50% 더 높은 가격에 팔린다. 현대 미술, 시계, 클래식 자동차를 산 경우가 더 수익이 높았다. 버킨백이 아니라 에르메스 주식을 샀다면 더 좋은 투자였다. 에르메스 주가는 2010년 이후 20배 이상 상승했기 때문이다.
ky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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