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아역 성폭행한 프랑스 유명 영화감독, 첫 재판서 "난 미투 피해자"

피해자 "4년간 매주 토요일 감독이 집에 불러 허벅지 등 만져"
감독 "내가 피해자랑 영화 안 찍으니까 복수심에 성폭행 주장"

9일(현지시간) 아역배우 아델 에넬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크리스토프 뤼지아 영화감독이 재판 중에 휴식하러 나가고 있다. 2024.12.09 ⓒ AFP=뉴스1 ⓒ News1 김지완 기자

(서울=뉴스1) 김지완 기자 = 20여년 전 당시 12살의 아역배우였던 배우 아델 에넬(35)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프랑스의 유명 영화감독 크리스토프 뤼지아(59)의 첫 재판이 열렸다.

AFP 통신에 따르면, 9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열린 재판에서 뤼지아는 에넬의 성폭행 주장이 "순수한 거짓말"이라고 부인하고, "프랑스판 미투 운동이 일어나야 했는데, 그 대상이 바로 나였다"며 자신이 미투 운동의 피해자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뤼지아는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징역 10년형과 15만 유로(약 2억 2600만 원)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그는 이 사건으로 프랑스영화감독조합 회장직에서 쫓겨났다.

반면 에넬은 "당신은 큰 거짓말쟁이"라며 "당신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반박했다.

판사는 뤼지아가 에넬에 대해 "에넬을 사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불운하게도 에넬과 사랑에 빠졌다", "에넬은 어린이의 몸을 가진 성인이다" 등의 말을 했다고 밝혔다.

에넬은 한 소년과 자폐증을 앓는 여동생 사이의 근친상간 관계를 다룬 뤼지아의 2002년 영화 '악마들'에 출연했다. 이 영화에는 에넬이 나체로 나오는 모습 등 성적인 장면들이 포함됐다. 이러한 장면 중 일부는 재판에서 공개됐으며, 이를 지켜보는 에넬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수사관들은 에넬이 "매우 불편한" 장면과 "폭력적인" 장면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또 영화 스태프들이 촬영장에서 뤼지아의 행동에 대해 불편해했다고 진술했다.

뤼지아는 이에 대해 "이 영화가 에넬에게 고통스럽고, 촬영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9일(현지시간) 영화감독 크리스토프 뤼지아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 사건을 폭로해 프랑스 영화계의 '미투 운동'을 촉발시킨 배우 아델 에넬이 휴식시간 중 파리 법정을 나서고 있다. 2024.12.09 ⓒ AFP=뉴스1 ⓒ News1 김지완 기자

뤼지아와 에넬의 관계는 촬영장 밖에서도 이어졌다. 에넬은 자신이 2001년부터 2004년까지 거의 매주 토요일 뤼지아의 집에 갔고, 그가 자신의 허벅지와 가슴, 성기를 만졌다고 증언했다.

당시의 경험과 관련해 에넬은 "이게 정상인 것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뤼지아가) 몸짓 사이사이에 말을 섞었다"며 "그러면 나는 긴장하고 소파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고 말했다. 에넬은 이어 분노에 찬 목소리로 "내가 너무 저항한다고 생각할 때 그는 내게 '뭐, 그래서 뭐'라는 듯이 쳐다보며 그 행동을 이어갔다"고 말했다. 이후 뤼지아는 에넬을 부모님에게 데려다 주면서 비스킷과 감귤류 탄산 음료를 주고는 했다.

반면 뤼지아는 자신의 집에 오겠다고 한 것은 에넬이었다며 둘이서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앉아서 영화 등에 대해 얘기했다"고 반박했다. 또 에넬이 자신의 기억을 "재구성했다"며 그와의 상호 작용을 성적인 것으로 재해석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린이였던 에넬에 성적으로 끌린 적이 없다면서도 12살 에넬이 영화를 찍을 때 "압도적인 관능성"이 있었다며 지금도 그렇다고 말했다.

에넬이 왜 자신에게 원한을 갖게 됐다고 생각하냐는 판사의 질문에 뤼지아는 자신이 에넬과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하자 그 복수심에 그랬다며 에넬이 "과격화됐다"고 답했다. 그는 "지난 5년간 그가 했던 것을 보라"며 에넬이 자신에 이어 세자르상을 받은 폴란스키에 대해서도 똑같은 일을 했다고 주장했다.

2020년 2월 에넬은 프랑스 국내 영화 시상식인 세자르 시상식에서 미성년자 성폭행 범죄자인 로만 폴란스키에 감독상을 수여할 때 "프랑스의 수치"라고 외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 적이 있다.

뤼지아는 에넬이 "정부의 모든 장관들은 강간범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추궁하기도 했다.

이날 재판이 시작되기 전 법정 밖에서는 주로 여성인 50명이 모여 "아델, 우리는 너를 믿는다. 강간범들아, 우리는 너희를 보고 있다"는 구호를 외치고 "아델, 너는 혼자가 아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었다.

지난 2019년 뤼지아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진 이 사건은 프랑스 영화계에서 '미투 운동'을 촉발시켰다. 프랑스 영화계의 전설인 제라르 드파르디외(75)는 현재 여성 2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내년 3월 재판을 받기 시작할 예정이며 브누아 자코와 자크 드와이옹 감독은 배우 쥐디트 고드레슈가 10대였을 때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은 모두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한편 에넬은 세자르 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배우로서의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지난해 5월 그는 영화계가 성범죄자에 안일하게 대응한다며 급작스럽게 은퇴를 발표했다.

gw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