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시위에 친러 여권·친EU 야권 대치…조지아 정국 혼돈으로
의회 밖에서 수만 명 모인 대규모 시위 열려…최소 150명 체포
친EU 성향 대통령 사임 거부…친러 여당은 차기 대통령 지명 강행
- 김지완 기자
(서울=뉴스1) 김지완 기자 = 조지아의 유럽연합(EU) 가입 협상 중단으로 촉발된 시위가 나흘째 이어지면서 정국이 혼돈에 빠지고 있다.
AFP 통신에 따르면, 1일(현지시간)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서는 수만 명의 시민이 의회 밖에서 조지아와 EU 국기를 흔들면서 시위를 열었다.
일부 시위대는 경찰을 향해 폭죽을 쏘거나 돌을 던졌고, 다른 시위대는 의회 입구를 막고 있는 철문을 두드렸다. 경찰은 물대포를 배치했지만 군중을 해산하지 못했다.
일부 경찰은 시위대를 거리로 쫓아가 폭행하고 고무탄과 최루탄을 발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야당인 통합국민운동당 지도자인 레반 카베이쉬빌리는 기자들에게 자신을 구금하려던 복면 경찰 15여 명의 공격을 받았지만 시위대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지아 공영 방송국(GPB) 앞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여당의 선전 도구 역할을 한다는 야권의 비판을 받아온 GPB는 이전에 거부한 친EU 성향의 살로메 주라비슈빌리 대통령의 출연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시위대는 EU 가입 협상을 중단한 여당 '조지아의 꿈'을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시위에 참석한 바텐더인 알렉산드르 디아사미제는 "조지아의 꿈은 (친)러시아 정부이며, 그들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내무부는 이번 시위에서 약 150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지아 청년 변호사 협회는 체포된 사람 수가 200명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10월 총선에서 승리해 재집권한 조지아의 꿈 소속의 이라클리 코바히제 총리는 28일 EU가 조지아를 협박하고 있다며 2028년 말까지 EU 가입 협상 개시를 국정 의제에 올리지 않고 EU 예산 보조금도 거부한다고 밝혔다. EU 가입은 헌법에도 명기될 만큼 조지아에 중요한 국가적 과제다.
그러나 야권은 총선에 러시아가 개입했다며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고, 국제 선거감시 단체와 서방 국가들도 이에 동조했다. 야당은 새 의회 출석을 보이콧하고 있다. 주라비슈빌리 대통령도 헌법재판소에 새 의회와 정부가 '불법'이라고 선언하며 선거 결과를 무효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코바히제 총리는 "10월 26일 국회의원 선거를 기반으로 한 새 정부 구성이 완료됐다"며 새 총선 실시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리고 극우 성향의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인 미하일 카벨라쉬빌리를 대통령직에 지명했다. 주라비슈빌리 대통령은 이에 자신이 "이 나라에서 유일한 합법 기관"이라며 "새 선거가 없으면 내 임기는 계속된다"고 말했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조지아에서 대통령은 실권이 없는 상징적 국가원수다.
조지아의 헌법 전문가들은 선거 결과 무효화 소송에 대한 법원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는 법적 요건을 위반하고 스스로 자격을 승인했기 때문에 코바히제의 총리 지명과 대통령 선거 실시 등 새 의회의 결정이 모두 무효라고 주장했다.
외교부, 국방부, 교육부 소속 공무원과 판사, 200명 이상의 외교관 등 수백 명의 공무원이 코바히제 대통령의 EU 가입 협상 연기 결정에 항의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고, 약 100개의 학교와 대학이 항의의 뜻으로 학업 활동을 중단했다.
다른 국가들도 조지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가브리엘리우스 란드스베르기스 리투아니아 외무장관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가 공동으로 "조지아의 합법적 시위를 진압한 사람들에 대한 제재"를 부과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매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도 "시위의 자유를 행사하는 조지아인들에 대해 과도한 무력이 사용됐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텔레그램에서 "조지아에서 혁명이 발생하려고 하고 있다"며 조지아가 "우크라이나의 길을 따라 어둠의 심연으로 가고 있다. 보통 이런 일은 아주 나쁘게 끝난다"고 지적했다.
gw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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