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용병 수백명 우크라 전쟁 투입…"높은 연봉에 속아 러 군 입대"

"좋은 일자리 약속에 속아…입대 거부하니 머리위로 권총 쐈다"
용병 대가로 러 무기지원 받는듯…"가난한 예멘, 용병모집 쉽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된 예멘 용병 모습. (사진은 파이낸셜타임스 영상 갈무리)

(서울=뉴스1) 김지완 기자 = 러시아가 수백 명의 예멘 출신 용병을 고용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4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이 예멘 남성들에게 높은 연봉과 직장, 러시아 국적 등을 약속해 이들을 러시아로 데려왔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예멘의 후티 반군과 연관된 기업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로 왔고, 도착 직후 강제로 러시아군에 입대한 뒤 전선에 투입됐다.

나빌이라는 이름의 러시아군에 입대한 한 예멘인은 FT에 자신이 보안이나 공학 분야의 화려한 직장을 약속받아 학업을 마칠 수 있다는 유혹에 이끌렸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9월 200명의 예멘인과 함께 러시아군에 입대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군사 훈련을 받은 적이 없었다. 또한 언어가 달라 직접 읽을 수 없는 계약서에 서명해야 했다.

몇 주 뒤 나빌은 4명의 예멘인과 함께 러시아 휘장이 달린 군복을 입고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채 우크라이나의 한 숲에서 포격을 받았다. 나빌이 공유한 영상에 따르면, 이들은 "포격을 받고 있다"는 언급과 한 동료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해 병원에 실려갔다는 언급도 나온다.

나빌은 며칠 뒤에 FT에 보낸 다른 메시지에서 "겨울옷이 없다"는 말도 했다. 영국에 사는 나빌의 삼촌은 조카가 다쳐 병원에 있다면서도 구체적 정보는 공유하지 못했다.

압둘라라는 가명을 쓰는 다른 예멘인은 러시아에서 드론 제조업을 하면서 1만 달러 보너스와 2000달러 월급을 받고 러시아 국적까지 얻을 수 있다고 약속받았다. 그는 다른 예멘인들과 함께 지난 9월 18일 모스크바에서 5시간 떨어진 한 시설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그는 러시아어로 된 입대 계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받았고, 이를 거부하자 기본적인 아랍어만 구사하는 남성이 권총을 그들 머리 위로 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압둘라는 "나는 무서웠기 때문에 계약서에 서명했다"고 말했다.

이후 압둘라와 동료들은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버스에 태워졌고 기본적 군사 훈련만 받고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 로스토프의 군사기지에 도착했다. 압둘라는 동료 중 상당수가 우크라이나에서 죽었다고 전했다. 그는 "인신매매를 하는 사기꾼들이 그들을 데려왔다"며 "전부 거짓말이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다행히 압둘라는 국제예멘이주민연맹이 예멘 정부에 압력을 넣은 덕분에 다른 10명의 예멘인과 함께 오만을 거쳐 예멘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FT가 입수한 용병 계약서에 따르면, 예멘 용병 투입은 이르면 지난 7월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예멘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후티 정치인 압둘왈리 압도 하산 알-자브리가가 세운 기업이 용병 모집과 수송 작업에 개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기업은 관광 업체와 의료 장비 및 의약 소매업체로 등록됐다.

용병을 보내주는 대가로 예멘은 러시아로부터 무기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예멘 특사인 팀 렌더킹은 러시아가 후티 반군과 무기 이전 논의를 포함해 적극적으로 연락을 시도하고 있으며 예멘 수도 사나의 러시아 인원이 이를 돕고 있다고 확인했다.

후티 반군은 또 지난해 10월 가자전쟁발 이후 홍해를 지나가는 화물선, 유조선 등에 미사일 공격을 퍼부을 때 이란 혁명수비대를 통해 받은 러시아의 위성 데이터를 사용해 타격할 선박의 좌표를 파악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예멘 싱크탱크인 사나전략연구센터의 마게드 알마다지 센터장은 이에 대해 러시아가 "미국에 호전적인 중동, 홍해의 그룹에 관심을 갖고 있다"며 후티 반군이 러시아와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용병을 보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싱크탱크인 왕립국제문제연구소(채텀하우스)에서 걸프만 지역을 연구하는 파레아 알슬리미는 "러시아가 필요한 것은 병사들이고 후티가 이들을 모집하는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예멘 용병 중 제대로 훈련을 받은 사람은 소수이며 다수가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에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멘은 매우 가난한 나라"라며 "예멘은 (군인을) 모집하기 쉽다"고 덧붙였다.

앞서 우크라이나의 전쟁포로처우조정본부는 지난 3월 러시아가 네팔, 소말리아, 인도, 쿠바 등지에서 용병을 모집해 전투에 투입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북한이 러시아에 약 1만 명 이상의 군대를 보내 우크라이나와 전투를 벌이고 있다.

gw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