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후 첫 유럽 정상회의…오르반만 기세등등[트럼프 시대]

제5회 유럽정치공동체 정상회의 헝가리 개최…대서양 동맹 악화에 자체 방위 강화키로
젤렌스키 "안전보장 없이는 종전 불가"…오르반 "세상 바뀌었다. 평화협상 시작해야"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오른쪽)가 7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제5회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에 참석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2024.11.07.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권영미 기자 =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 처음으로 유럽 각국의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고리로 유럽연합(EU)을 이끌어 왔던 독일과 프랑스의 입지는 줄어들었지만, 트럼프와 친분이 두터운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기세등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로이터·AFP 통신과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제5회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는 7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렸다. EU 24개국에 영국과 우크라이나 등을 합쳐 총 42개국 대표단이 참석했다. 유럽정치공동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EU와 비(非) EU유럽국들 간 반(反)러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2022년 10월 출범한 회의체다.

오르반 총리는 이날 정상회의가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럽 정상들이 대(對)우크라이나 추가 군사지원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며 헝가리가 주장했던 대로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평화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미국 대선을 계기로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몇 배로 불어났다"고 말했다. 이어 "세상은 변할 것"이라며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변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평화 진영'의 일원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답변을 거부했다.

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자국의 안전보장이 담보되지 않는 한 평화협상을 개시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러시아와의 성급한 휴전은 "우리의 주권과 독립을 망치고 파괴하는 것"이라며 오르반을 겨냥해 "휴전을 떠들면서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에 반대하는 지도자는 웅변가일 뿐"이라고 직격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이 7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제5회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과 기념 사진을 촬영하는 도중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4.11.07.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그러나 각국 정상들은 고립주의 외교 노선을 표방한 트럼프의 당선으로 미국-유럽 간 '대서양 동맹'이 약화할 것을 의식해 유럽 자체 방위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오르반은 기자회견에서 "유럽이 평화와 안보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며 "미국이 우리를 보호해 주기를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정상회의 모두 발언에서 "우리의 안보를 영원히 미국에 위임할 수는 없다"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 유럽이 '육식동물'에 둘러싸인 약한 '초식동물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유럽의 미래는 이제 우리 손에 달려 있다"며 이전에도 "유럽이 함께함으로써 책임을 다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전날 자신의 증세 정책을 반대한 크리스티안 린드너 재무장관의 해임을 결정하면서 3당(사회민주·자유민주·녹색당) 연정이 3년 만에 붕괴했기 때문이다. 숄츠는 이날 유럽정치공동체 정상회의와 오는 11일부터 열리는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 참석을 취소했다.

마크롱도 지난 7월 조기 총선 패배로 9월 들어 '동거 정부'를 꾸렸는데, 총리에 정통 우파 공화당 소속 미셸 바르니에 전 장관을 임명하면서 극우 저지를 위해 총선 때 힘을 합쳤던 좌파 연합으로부터 강력한 반발에 직면한 상태다. 독일·프랑스 정상이 국내 정치에 발목이 잡힌 사이 공교롭게도 '비주류' 오르반이 회의를 이끄는 모습이 연출되자 에디 라마 알바니아 총리는 이날 취재진에게 "모든 유럽이 '검은 양' 빅토르의 헛간에 모인 게 특별했다"고 논평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7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제5회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에서 개회 연설을 하고 있다. 2024.11.07. ⓒ AFP=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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