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 스페인 국왕에 진흙 투척…홍수 늦장 대응에 이재민 분노
국왕 부부에 "물이 없다"며 절규…현장에 극우단체도
'적시 경보 늦었다' 잇단 지적…총리 "과실 있으면 조사"
- 김지완 기자
(서울=뉴스1) 김지완 기자 = 유럽에서 50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홍수로 큰 피해를 겪고 있는 스페인 수해 현장을 찾은 스페인 국왕 부부와 총리를 향해 정부의 늦장 대응에 분노한 이재민들이 진흙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AP 통신,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3일(현지시간) 펠리페 6세 국왕과 레티시아 여왕은 검은색 비옷 차림으로 홍수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발렌시아주 외곽의 파이포르타를 찾았다. 이 자리에서 수백명의 주민들은 국왕을 향해 "꺼져라", "살인자"라고 외쳤고, 일부 주민은 진흙을 던졌다.
주민들이 진흙을 던지자 경호원들은 우산을 펼쳐 국왕 부부를 보호했다.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현장을 빠져나갔지만, 펠리페 국왕은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가려고 했다.
레티시아 왕비도 주민들을 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의 얼굴과 머리카락에는 진흙이 묻어 있었고, 그의 경호원 중 한명은 누군가가 던진 물건에 맞아 얼굴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한 여성은 레티시아 왕비에게 "우리는 물이 없다"며 절박한 심정을 드러냈다.
주민들은 홍수 경보와 정부 당국의 대응이 늦어진 것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한 주민은 국왕에게 눈물을 흘리며 "우리는 경고를 받고 싶었을 뿐이며, (경고를 받았다면) 우리는 무사할 수 있었다"고 소리쳤다.
한 젊은 남성도 국왕에게 "(홍수가 올 것을) 알고 있었는데 아무도 이를 피하기 위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펠리페 국왕은 이후 지역 당국자들에게 "홍수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그들의 필요에 부응해야 한다"라며 국가가 그들을 위해 있다는 것을 보장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입헌군주제 국가로 국왕의 위신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 스페인에서 국왕이 이러한 봉변을 당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카를로스 마손 발렌시아주 주지사도 파이포르타를 방문해 주민들로부터 야유와 욕설을 들었다. 그는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나는 대중의 분노를 이해하며 당연히 이를 받아들일 것이다. 이는 내 정치적·도덕적 의무"라며 "이날 아침 국왕의 태도는 모범적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는 스페인 극우 단체를 상징하는 의상을 입은 시위자들도 목격됐다. 일부 주민은 산체스 총리의 관용차의 유리창을 깨는 등 폭력 행위를 보이기도 했다.
펠리페 국왕은 "많은 독성 정보가 퍼지고 있으며 많은 사람이 혼란에 관심을 갖고 있다"며 고조된 분위기를 틈타 혼란을 부추기려는 시도에 대해 경고했다.
산체스 총리도 "우리는 몇몇 지엽적 행동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며 폭력 행위에 경고를 날렸고 피해 복구를 서둘러야 할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스페인 홍수로 인한 사망자는 3일 기준 217명까지 올랐다. 사망자 중 대부분은 발렌시아주에서 발생했으며 62명이 파이포르타에서 발생했다. 또한 3000여 가구가 여전히 전력이 끊긴 상태다.
스페인 중앙 정부는 주민들에게 경보를 내리는 것은 지자체의 책임이라고 밝혔지만 발렌시아주 당국은 당시 갖고 있던 정보를 갖고 최대한 노력했다는 입장이다.
산체스 총리는 "우리의 대응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알고 있다"면서 대응 과정에서 잠재적 과실이 있다면 조사 대상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비극 속에서도 정치적 단결을 호소했다.
알리칸테 대학의 기후 전문가인 호르헤 올시나는 "적시의 경고가 있었다면 여러 사망자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의 부실한 협력·조정 과정을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재난의 규모를 감안하면 "감당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스페인 정부는 1만명의 군 병력과 경찰을 추가 투입해 수해 복구 작업에 나서고 있다.
이번 홍수는 1967년 500명이 사망한 포르투갈 홍수 이후 단일 국가에서 발생한 최악의 홍수다.
gw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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