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C 말 프랑스 사회에 인권과 정의를 일깨운 사건 [역사&오늘]
9월 19일, 알프레드 드레퓌스 석방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99년 9월 19일,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를 격렬하게 흔들었던 '드레퓌스 사건'의 주인공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대통령 특사로 석방됐다. 단순한 법정 다툼을 넘어 반유대주의, 언론의 역할, 그리고 정의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촉발했던 사건의 당사자였다.
1894년 프랑스 육군 포병 대위였던 드레퓌스는 독일에 군사 기밀을 넘겼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악마섬으로 유배됐다. 이 과정에서 드레퓌스의 유대인이라는 신분이 그의 유죄를 확신하는 중요한 근거로 작용했다.
1870년 프랑스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해 국민적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러한 시기에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 사회의 여러 문제점을 복합적으로 드러냈다. 반유대주의, 군부의 권위주의, 정치적 대립 등이 결합되어 드레퓌스라는 한 개인의 삶을 비극으로 만들었고, 프랑스 사회 전체를 격렬한 논쟁으로 몰아넣었다.
드레퓌스는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고, 그의 지지자들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특히 소설가 에밀 졸라는 소설 '나는 고발한다'를 집필해 드레퓌스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의 글에 많은 사람이 드레퓌스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석방된 드레퓌스는 1906년 무죄를 확인받고 명예와 직위가 복권됐다. 이후 그는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으며, 1918년 중령으로 전역했고, 1935년에 사망한 후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혔다. 심지어 레지옹 도뇌르 훈장까지 받았다.
드레퓌스 사건은 졸라를 비롯한 많은 지식인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언론의 사회적 책임과 중요성을 일깨웠다. 특히 졸라는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드레퓌스 사건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람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희생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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