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경찰 또 상습 성폭행 기소…"사법기관 불만 상당한 수준"[통신One]

직위 이용한 연이은 상습 성폭행 사건에 경찰 신뢰도 바닥
사법기관 불신↑…"범죄 피해자 73% 정의 구현 믿지 않아"

영국 런던 고등법원 밖에서 경찰들이 경비를 서고 있다. 2024.03.26/ ⓒ 로이터=뉴스1 ⓒ News1 권진영 기자

(런던=뉴스1) 조아현 통신원 = 영국에서 최근 수년 동안 현직 경찰이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잇따라 드러난 가운데 상습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경찰관 사례가 또다시 적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 당국은 여성을 납치 살해한 웨인 쿠젠스와 약 20년 동안 여성 12명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데이비드 캐릭 사건 이후 국민적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 대대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이번 사건으로 갈 길이 한층 멀어지게 됐다.

최근 범죄 피해자 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에서는 피해자 가운데 70% 이상이 경찰에 범죄를 신고해도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결과마저 나왔다.

3일(현지시간) 런던 광역 경찰청 내 자체 감시기구인 경찰 행위 독립사무소(IOPC)에 따르면 전직 경찰 마크 타이렐(66)은 지난 2017년부터 지난 2023년까지 6년동안 강간 2건, 성폭행 15건, 증거인멸, 공무상 직권남용 등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타이렐의 혐의는 모두 여성 피해자 한 명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타이렐의 경우 피해 여성이 자신보다 취약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이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수사가 개시되자 메시지를 삭제하거나 피해 여성에게 허위 진술을 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조사 과정에서 거짓말을 한 혐의도 추가됐다.

경찰은 지난해 4월 내부 조사 과정에서 타이렐의 혐의를 적발해 체포했고 같은 해 8월 관련 수사를 끝내고 증거 자료를 모두 검찰에 넘겼다고 밝혔다.

같은해 9월 타이렐은 경찰 배지를 반납했다. 그가 근무했던 부서는 런던 광역 경찰청 안에서도 정예 부서로 꼽힌다. 이들은 대부분 무장을 한 상태로 런던 전역의 대사관을 포함한 외교 공관, 의회 건물을 경호한다.

지난 2021년 3월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어겼다는 가짜 이유를 들어 피해 여성인 사라 에버라드를 체포한 뒤 성폭행하고 살해한 웨인 쿠젠스도 같은 부서 경찰관이었다.

지난해 1월 현직 경찰 신분을 이용해 피해 여성 12명을 대상으로 49건에 달하는 성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던 데이비드 캐릭 역시 동일한 의회·외교보호사령부 소속 경찰이었다.

경찰은 타이렐이 쿠젠스나 캐릭과 함께 근무하지 않았고 서로 알고 있었다는 증거도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 조직 안에서 직위를 이용한 상습 성범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패턴을 분석하고 범죄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편 범죄 피해자 위원회가 최근 발간한 '2023년 연간 피해자 조사 보고서(Victim's Commissioner's annual victim survey)'에 따르면 범죄 피해자 가운데 73%가 범죄 신고가 정의 실현으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보고서는 잉글랜드와 웨일스 전역의 범죄 피해자 3048명의 목소리를 담았다. 현재까지 범죄 피해자 위원회가 수행한 연구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피해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진행됐다.

보고서는 피해자들이 경찰과 검찰을 포함해 사법기관에 대한 불만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지적한다. 또한 사법 시스템 전반에 대한 신뢰도가 부족하다고 짚었다.

보고서에서 한 피해자는 "사법 시스템 전체가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며 "예산 부족과 사기 저하로 피해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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