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위협' 카드 또 꺼낸 러시아…"말만 한다 생각하면 큰 실수"[딥포커스]

러 내부서 핵 교리 수정 목소리 고조…"선제 공격 준비 알려야"
우크라, 러 본토 진격 등 전황 변화…"러시아 '레드라인' 시험"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윤영 기자

(서울=뉴스1) 이창규 기자 = 2년 반 동안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가 '핵 교리' 수정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또다시 핵 위협에 나섰다. 우크라이나가 개전 이후 처음 러시아의 국경을 넘어 진격하면서 반격에 나서자 핵무기 사용 기준 완화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우크라이나와 서방 국가를 향해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러시아가 그동안 몇 차례의 핵 위협을 하며 긴장을 고조시켰으나 이번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레드라인'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핵무기 사용 기준을 완화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은 지난 1일 공개된 국영 타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확대하려는 서방에 대응하기 위해 핵 교리 수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반복적으로 말했듯이 (핵 교리 수정) 작업은 현재 진행 단계에 있다"며 "최근 갈등의 발전에 대한 검토 및 분석을 토대로 (핵 교리에 대한) 수정을 도입하려는 (정부의) 분명한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수정 시점에 대해선 "국가 안전 보장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라며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지난 2020년 6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명한 '러시아 핵 억제 기본원칙'에 따라 △적국의 핵무기 발사가 임박한 징후와 자료 식별 △러시아와 동맹국에 대한 대량파괴 무기(WMD) 사용 징후 포착 △러시아 핵무기 지휘 및 통제 시설에 대한 공격 임박 △적국의 재래식 무기가 러시아의 현 국가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경우에만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선제 공격보다는 방어를 위해서만 사용을 허가하고 있는 셈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시작 후 여러 차례 핵 위협을 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벨라루스에 전술 핵무기를 배치한 데 이어 지난 3월엔 "군사 기술적 관점에서 핵전쟁에 대비하고 있다"고 위협했다. 지난 6월엔 핵 교리에 대해 "살아있는 도구"라며 국제 정세 변화에 따른 변경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모스크바 상공의 2대를 포함해 밤새 러시아 15개 지역에서 158대의 우크라이나 드론을 격추했다고 1일(현지시간) 밝혔다. 국방부는 텔레그램을 통해 122대의 드론은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쿠르스크, 브라이언스크, 보로네즈, 벨고로드에서 격추됐다고 말했다. 사진은 이날 벨고로드 주지사 체슬라프 글래드코프의 공식 텔레그램 계정에 공개된 드론 공격을 입은 자동차의 모습. 2024.09.01 ⓒ AFP=뉴스1 ⓒ News1 유수연 기자

그러나 러시아가 뚜렷한 핵 공격 조짐 징후가 포착되지는 않았다. 이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 국가들의 지원이 계속되면서 러시아 내에선 (선제 공격도 가능하도록) 핵무기 사용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제기됐다.

러시아의 초강경 외교 정책 전문가인 세르게이 카라가노프는 지난해 6월 "적들을 제압하고 겁주고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한다"며 핵무기 사용 기준 완화를 주장했다.

그는 "75년 간 상대적 평화를 누리면서 사람들은 전쟁과 핵무기에 대한 공포를 잃어버렸다"며 "적들이 러시아가 필요하다면 선제적이고 제한적인 핵 공격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안드레이 카르타폴로프 러시아 하원 국방위원장도 지난 6월 "러시아가 자국 안보에 대한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고 느끼면 핵 교리를 수정해 핵무기 사용 결정 절차와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비록 사용을 제한하긴 했으나 전차와 장거리 미사일, F-16 등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국경을 넘어 쿠르스크 지역으로 진격하면서 러시아의 핵무기 위협을 더욱 촉발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핵무기 보유국이 핵무기 미보유국의 침략과 점령에 직면한 것은 처음이라며 러시아의 '레드라인'이 시험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러시아가 핵 교리를 수정하더라도 변경 사실만 발표할 뿐 그 내용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공개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핵 교리 수정에 따른 여파가 상당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로이터 통신은 러시아가 핵 교리를 수정하면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서방과 연대하지 않은 국가들이 러시아를 심각하게 적대시할 수 있다고 전했다.

소련과 러시아에서 군비 통제 협상가였던 니콜라이 소코프는 "러시아의 레드라인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확실히 모른다"며 "그들(러시아)이 단지 말만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실수다. 교리가 바뀌면 모두가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yellowapoll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