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택한 유럽 유권자, 중심엔 주류 정당 외면한 젊은층[딥포커스]

"정치 주류, 젊은층 만족할 만한 정답 제시 못했다"
"윗 세대와 달리 경제적 어려움…포퓰리즘에 취약"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연합(RN)을 이끄는 마린 르펜 전 대표가 2일 파리 당사에 도착, 차에서 내리고 있다. 지난달 30일 치러진 조기 총선 1차 투표에서 RN이 득표율 33%로 1위를 차지한 가운데 프랑스 국민들은 7일 조기 총선 마지막 2차 투표를 앞두고 있다. 2024.07.02 ⓒ AFP=뉴스1 ⓒ News1 조유리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무솔리니의 로마 진군과 히틀러의 독일 총리 임명은 유럽 내 극우 세력 부상의 시작이었다. 이들 정부는 유럽인들, 나아가 전 세계인들에게 깊은 상처와 공포를 남겼다. 그래서 극우는 유럽 일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금기시되는 단어다. 2차 대전에서 독일의 패배는 이 이념의 패배를 알렸다.

하지만 이후에도 극우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지하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던 극우는 지난 수년 간 세력을 키우더니 이제는 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다고 해도 과하지 않았다.

단순한 '백인 우월주의' 때문이 아니라 인플레이션, 코로나19 여파, 이주민 문제 등 다양한 요인이 뒤섞인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집권 여당을 뽑을 이유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이 물보라를 일으키는 주역으로 꼽힌다.

2일(현지시간) 외신을 종합하면 프랑스 총선 1차 투표에서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정당인 국민연합(RN)이 득표율 33.2%로 1위를 기록했다.

4일 총선을 앞둔 영국에서도 극우 정치인 나이절 패라지 대표가 이끄는 영국 개혁당이 3위로 올라섰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2위인 보수당을 제치기도 했다.

독일에서도 극우 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이 약진했다. AfD는 지난달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득표율 15.9%로 2위를 차지했다. 벨기에에서도 우파가 약진하며 알렉산더르 더크로 벨기에 총리가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극우 성향의 자유당이 선두를 달리고 있고, 폴란드에서는 극우 남부연합당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그리피스 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던컨 맥도넬은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에서 우파의 부상이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계속 성장하고 있다"며 "과거에는 극우파를 볼 수 없었던 국가에서도 급진 우파의 정규화와 확산이 분명히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영국의 대표적인 음악 페스티벌 중 하나인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이 열린 영국 남서부 서머셋에서 투표를 독려하는 포스터가 걸려 있다. 24.06.29 ⓒ AFP=뉴스1 ⓒ News1 김예슬 기자

◇극우 물결 중심에는 젊은 유권자

현재 유럽에 불어닥친 극우 돌풍은 과거의 우파 정당들처럼 '인종 우월주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우선 극우 물결을 이끄는 핵심 주체는 젊은 유권자들이다. 싱크탱크 싱크유스의 데이터에 따르면 청년 유권자의 약 3분의 1이 프랑스 극우 RN과 폴란드 남부연합당에 표를 던졌다.

25세 미만 독일 유권자의 16%가 유럽의회 선거에서 AfD에 투표했고, 이탈리아 18~34세 유권자의 21%는 조르자 멜로니 총리를 지지하고 있다. 스페인 극우정당 복스(VoX)는 25세 미만 유권자 중 12.4%의 지지를 얻었다. 덴마크에서도 극우 덴마크 민주당이 22~30세 유권자 10%의 표를 확보하며 4위로 올라섰다.

극우 정당에 표를 던진 청년 유권자들은 최근 급증했다. 독일에서 AfD에 투표한 24~30세 유권자는 2019년 유럽의회 선거와 비교해 11%포인트(p) 증가했다. 프랑스의 경우 RN을 뽑은 청년 유권자는 2019년 대비 10%p 올랐다.

유럽에서 강경 우파는 지난 25년 동안 몇 차례 부상했다. 오스트리아 극우파 정치인 요르그 하이더(2008년 사망)가 이끄는 자유당이 2010년 처음으로 중앙정부에 진출했고, 2015년 브렉시트와 함께 이주민 혐오와 자국 우선주의가 붐을 일으켰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독일 서부 에센에서 열린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전당대회 마지막 날, 당 공동대표인 앨리스 바이델과 티노 크루팔라가 연단에 서고 있다. 24.06.30 ⓒ AFP=뉴스1 ⓒ News1 김예슬 기자

◇"정치 주류, 젊은 층 만족할 만한 정답 제시 못했다"

이번 물결은 이전의 극우 득세와는 기반이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코노미스트는 "극우파는 기회주의적으로 분노를 불러일으킬 새로운 주제를 찾았다"며 "대부분 우파들은 여전히 이주민에 반대하지만, 가장 분명한 건 기후 친화적 정책에 대한 적대감이 고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나쉬 대학의 정치 및 국제 관계 교수인 벤 웰링스도 ABC뉴스에 "전통적으로 극우 정당은 권위주의적이고 반유대주의적이며 인종차별주의적"이라며 "과거 극우파는 백인 우월자였겠지만 지금의 급진파는 조금 더 복잡하다"고 설명했다.

폴리티코 유럽판 역시 "왜 유럽의 Z세대와 젊은 밀레니얼 세대는 좌파를 지지한 그들의 부모나 조부모와는 달리 왜 정반대를 받아들이나"라며 "유럽의 생활비 위기부터 코로나 기간 고립을 겪은 젊은이들, 이주민 위기까지 다양한 요인이 뒤섞여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유럽을 이끌었던 좌파와 이들이 내놓은 정책이 젊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의미다. 이코노미스트는 "주류 정당은 자신들이 분노한 국민을 만족시키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유럽에서 극우의 새로운 성공은 부분적으로 중앙정부의 실패"라고 평가했다.

영국 가디언도 "좌파의 의제는 많은 젊은이들의 우려에 부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설득력이 없다"며 "정치 주류는 젊은이들의 불만에 대해 만족스러운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CNN 역시 프랑스 극우 정당 RN이 제안한 정책을 언급하며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실었다. CNN은 "이러한 정책을 생각해 보자. 젊은이들은 소득세를 내지 않고, 사업을 시작하면 5년 동안 법인세가 면제된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학생들에게는 주(州)에서 임금을 보충해 주고, 주 정부는 학생을 위한 주택 10만채를 공급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극좌파의 정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2022년 대선에서 RN의 르펜이 제안한 것"이라며 "젊은이들이 이 정책을 반긴 것은 놀랍지 않다"고 덧붙였다.

경제 호황기를 누리지 못한 젊은 층들은 포퓰리즘 정책에 쉽게 휩쓸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미래 민주주의 센터 공동 이사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청년들의 불만을 연구하는 로베르토 포아는 CNN에 "서구 사회에는 두 가지 큰 분열이 있다고 본다"며 "경제적으로 성공한 지역과 뒤처진 지역 간 부의 격차, 그리고 삶의 기회에 대한 세대 간 격차"라고 분석했다.

독일 청년 대상 설문조사를 진행한 사이먼 슈네처는 CNN에 "젊은이들은 처음 투표하는 사람들"이라며 "그들의 결정을 가장 많이 좌우하는 것은 누가 내 필요에 가장 잘 맞는 것을 제공하느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yeseu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