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초기 연합군 33만여 명을 구출한 기적의 탈출작전' [역사&오늘]

5월 26일, 영불 연합군의 됭케르크 철수작전 개시

됭케르크 해안에 집결한 연합군 병사들. (출처: Unknown author, 흑백사진(1940),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40년 5월 26일, 됭케르크 철수작전이 시작됐다. 벨기에군, 영국군, 프랑스군 등을 포함한 총 33만여 명의 병사들을 구출할 목적으로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실행한 대규모 철수작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연합군은 연전연패 끝에 프랑스 북부 됭케르크에서 독일군에 몰려 위기에 처했다. 기동력에서 앞선 독일군의 됭케르크 함락은 시간문제였다. 이 절박한 상황 속에서 영국은 윈스턴 처질 총리의 주도로 대규모 해상 철수작전을 계획했다.

암호명은 '다이나모 작전'이었다. 민간 선박을 포함한 가용할 수 있는 선박을 모조리 동원해 됭케르크 해변에 집결한 연합군 병사들을 최대한 탈출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이 작전은 매우 무모하고, 위험했다. 처칠은 의회에서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고 밝혔다.

5월 27일, 함선들이 됭케르크 해변에 속속 도착했다. 이때 기적이 일어났다. 히틀러가 됭케르크를 향해 진격 중이던 기갑부대에 돌연 공격 중단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기갑부대를 뒤따르던 보병부대가 진군 속도를 맞추지 못하자, 연합군의 대규모 반격이 있을 경우 기갑부대가 고립될 것을 우려한 결정이었다.

기갑부대는 프랑스 점령에 반드시 필요했다. 더구나 독일 공군 원수 헤르만 괴링은 공군만으로도 뒹케르크의 연합군을 섬멸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히틀러는 괴링의 말을 믿었지만, 이것이 실책이었다. 영국 공군이 사력을 다해 독일의 공격을 막아냈고, 영불해협의 악천후도 독일의 공격을 방해했다. 이로 인해 연합군 병사들은 탈출에 필요한 황금 같은 시간을 벌 수 있었다.

6월 4일까지 '다이나모 작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동원된 900여 척의 배가 33만 8000여 명의 연합군 병사들을 영국으로 무사히 실어 날랐다. 됭케르크 철수작전은 연합군의 사기를 크게 올렸다. 이때 탈출한 병력 대다수가 1944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투입돼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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