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회복 '청신호' 깜빡이자 총선 승부수 띄운 英 수낵 총리[통신One]
6주 앞으로 다가온 선거에 노동당 ‘변화’ vs 보수당 ‘성과’ 외쳐
수낵 "내가 이끄는 정부, 경제 안정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것"
(런던=뉴스1) 조아현 통신원 = 영국 통계청(ONS)이 인플레이션 수치가 최근 3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분석을 내놓은 지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리시 수낵 총리가 오는 7월 4일로 총선 날짜를 깜짝 발표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영국의 경제성장률 회복 조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금리 인하를 권고한 지 하루만이기도 하다.
불과 지난 달 중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요 선진 7개국인 G7 가운데 영국이 오는 2025년 최악의 경제 성적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한 것과 대조되는 발표가 최근 며칠 동안 이어졌다.
수낵 총리는 올해 하반기에 총선을 실시할 가능성이 높다고 자주 언급해 왔기 때문에 이번 발표는 당 안팎에서도 갑작스럽게 여겨졌다.
수낵 총리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국내총생산(GDP) 등 경제 전망이 개선될 시기를 살펴보면서 총선 카드를 언제 꺼낼지 ‘숨 고르기’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키어 스타머 영국 노동당 대표는 총선 소집 날짜가 정해지자 "기다려온 순간"이라면서 이번 총선은 국가를 변화시킬 절호의 기회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보수당이 앞으로 5년 더 집권하게 된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낵 총리는 이날 오후 총리 관저가 있는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앞에서 우산도 쓰지 않은 채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지난 5년간 영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면서 총선 소집 관련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코로나19 감염병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치솟은 에너지 가격 등 힘든 여건을 겪고도 경제적 안정을 일궈냈다는 점을 호소했다.
또한 HS2 고속철도 건설 추진과 이주민들을 줄인 성과 등을 언급하면서 “정부에는 계획이 있고 과감한 조처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수낵 총리는 이어 "내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가 경제 안정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것임을 증명하겠다"고 말했다.
보수당 일각에서는 수낵 총리가 예상보다 빨리 총선을 소집한 것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고 BBC는 전했다.
경제지표 개선이 선거를 앞둔 보수당의 표심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경제 전망이 나아졌다는 수치만으로 충분하지 않을뿐더러 수낵 총리나 보수당의 지지율 상승세로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도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그 배경이 리즈 트러스와 보리스 존슨 등 보수당 출신의 전임 총리들의 연이은 재정 정책 실패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유권자들은 존슨 전 총리 재임 동안 보수당의 경제 운영 능력을 점차 불신하기 시작했다. 지난 2022년 9월 트러스 전 총리의 미니 예산안 발표 이후 유권자들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트러스 전 총리의 대규모 감세를 포함한 미니 예산안 발표 이후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지면서 보수당의 경제 운영 능력에 대한 평판에 결정적인 타격을 줬다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글로벌 여론조사 업체 유고브가 실시한 설문 조사 데이터를 살펴보면 '어느 정부가 경제 운영을 더 잘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보수당은 존슨 전 총리 재임 시절인 2021년 5월부터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2022년 6월을 기점으로 보수당은 노동당에 추월당하기 시작했고 2022년 9월 트러스 전 총리가 임기를 시작한 지 49일 만인 10월에 총리직에서 물러난 이후 노동당은 우위를 선점했다.
지난 2022년 9월 말 유고브의 설문조사에서 영국인 가운데 44%는 생활비 문제 해결 측면에서 '노동당을 더 신뢰한다'고 답변했다. 보수당을 더 신뢰한다는 답변은 불과 12%에 그쳤다.
경제 성장을 실현할 주체에 대해서도 노동당을 신뢰한다는 답변이 33%, 보수당은 반토막 수준인 16%였다.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이날 환한 브리핑룸에서 총선 날짜가 정해진 것을 환영하고 대다수의 영국인이 갈망하는 '변화'를 실현할 기회가 왔음을 강조했다.
반면 수낵 총리는 브리핑룸이 아닌 관저 앞에서 우산도 쓰지 않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그동안 온갖 위기를 돌파해 온 성과를 호소했다.
단 6주 만에 집권 여당이 극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지금으로써는 총선에서 노동당의 승리가 거의 확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전 정부가 은폐하거나 눈감았던 우체국 스캔들과 오염 혈액 스캔들을 수습하고 경기 침체에도 성과를 내야 했던 수낵 총리의 처절한 호소가 부동층이나 무당파 표심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또한 극우 노선으로 분류되는 개혁당이 보수당의 표를 가져갈 수 있을지 아니면 기후 변화 위기가 갈수록 피부로 느껴지는 시점에서 녹색당이 노동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를 얼마나 흡수할지도 지켜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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