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전쟁 7개월…유럽의 무게추는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으로 넘어갔다[딥포커스]
"전쟁 중단하고 이·팔 공존해야"…EU 내 승인국 3분의1로 늘어
3만5천 사망·라파 지상전 목전…이 지지 균열에 美 우려 표명
- 김성식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스페인과 아일랜드, 노르웨이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승인하기로 결정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7개월째 이어지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인명피해가 속출하자 유럽마저 전쟁을 강행하는 이스라엘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으로 더 많은 유럽국이 팔레스타인을 독립국으로 승인할 경우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우선해 온 미국의 중동 정책에도 부담이 따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22일(현지시간) 하원 연설에서 가자지구 전쟁 휴전을 압박하는 차원에서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승인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사이먼 해리스 아일랜드 총리도 기자회견을 열고 양측의 평화적 공존을 위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겠다고 했고, 요나스 가르 스퇴레 노르웨이 총리도 동일한 조치를 예고했다. 이들 3국은 모두 시행 시점을 오는 28일로 확정했다.
이날 스페인·아일랜드의 합류로 27개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팔레스타인을 독립국으로 인정한 국가는 모두 9개국으로 늘어나게 됐다. 중립국인 노르웨이는 유럽단일시장에 참여할 뿐 EU 회원국은 아니다. 유엔 193개 회원국 중 144개국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승인한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비율이다. 게다가 EU의 기승인 7개국 중 5개국은 EU 가입 이전에 관련 조치를 단행한 옛 동유럽 국가다.
그럼에도 이날 뉴욕타임스(NYT)는 "실질적 효과는 거의 없지만 이스라엘을 향해 날카로운 질책을 보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3국이 이스라엘 주권을 훼손하고 자국 안보를 위협했다고 반발하며 즉각 3국 주재 대사의 귀국을 명령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별개의 국가로 공존하는 '두 국가 방안'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시작된 양측의 오랜 긴장 관계를 해소할 해법이란 평가를 받지만,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대한 통제권을 계속 갖길 원하는 이스라엘은 이에 반대해 왔다.
이날 3국이 일제히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을 예고한 건 가자지구 전쟁이 갈수록 참혹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으로 이스라엘에서 1200여명이 사망하고 240명가량이 가자지구에 인질로 피랍되자 유럽국들은 대체로 이스라엘의 자위권 행사에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하마스 소탕을 목표로 이스라엘군이 군사작전을 전개하면서 가자지구 누적 사망자 수가 3만5562명(20일 기준)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더해 가자지구 중북부를 점령한 이스라엘군이 마지막 남은 미수복지 라파에도 7일 전차를 보내자, 인도적 위기에 대한 우려가 최고조에 달했다. 가자 최남단 도시 라파는 가자지구 주민 230만명 중 절반 이상인 140만명의 피란민이 머물던 곳이자 이집트와 연결된 검문소를 통해 구호품이 반입되던 지역이었다. 유엔은 이날 이스라엘군의 지상작전 확대와 구호품 부족으로 라파에서의 식량 배급이 모두 중단됐다고 밝혔다.
NYT "가자지구의 인도적 상황이 악화하자 이스라엘이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닌 침략자처럼 보인다"고 꼬집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스라엘과 첨단기술과 경제·무역 분야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유럽국들도 가자지구 전쟁에 강경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국내외 압력에 직면했다. 20일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사장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상대로 체포영장을 청구하자 프랑스는 가자지구 인명피해에 대해 경고해 왔다며 ICC의 독립성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냈고, 벨기에와 슬로베니아도 이에 동참했다.
유럽마저 이스라엘과 등을 돌리기 시작하자 이스라엘의 우방국인 미국으로선 상당한 부담을 떠안게 됐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전에 이스라엘을 지지했던 목소리가 다른 방향으로 표류하는 것을 확실히 목격했다"며 "이스라엘의 장기적인 안보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18일 팔레스타인의 유엔 정회원국 가입 결의안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안건으로 상정되자 미국은 거부권을 행사해 이를 부결시킨 바 있다.
당시 미국은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에 대해 당사자 간 대화로 풀어야 할 일이라며 거부권 행사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현재로선 미국이 중동 문제로 국제 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EU 내에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회원국 간 견해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독일은 ICC 검사장이 네타냐후 총리와 하마스 지도부를 상대로 체포영장을 동시에 발부하자 "양측이 같다는 잘못된 인상을 심어준다"고 비판했고, 헝가리와 체코는 테러 조직과 이스라엘을 동일 선상에 두는 건 잘못된 행태라고 맹비난했다. EU가 국제 문제에서 단일 입장을 내놓으려면 27개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하다.
seongs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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