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에서 누가 당선되어도 '러-한관계' 달라져선 안 돼"[대사에게 듣는다]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 "러-한관계, 최악은 아냐"
"작은 발자국이라도 조금씩 걸어야…'직통 항공편' 재개했으면"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가 14일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대사관에서 진행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5.14/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서울=뉴스1) 조소영 박재하 기자 = "미국 국민이 누구를 뽑느냐는 것에 따라서 러-한관계, 러-중관계가 달라지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는 지난 14일 서울 중구 서소문로에 위치한 주한러시아대사관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오는 11월에 있을 '미국 대선'에 대한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지노비예프 대사는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이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든 이미 겪었던 인물들인 만큼 러시아는 미(美) 대선에서 누가 당선이 되어도 상관이 없다고 했다. 단, 미국으로 인해 한국 등 다른 나라들이 '러시아와의 관계'가 틀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엿보였다.

러시아 외무부에서 한국과 북한, 중국, 몽골을 담당하는 제1아주국 부국장 등을 지낸 지노비예프 대사는 이른바 '아시아통'으로 불린다. 그는 현 한반도 상황에 있어선 "긴장이 고조되고 있고 많은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면서도 상황이 '극도의 갈등'으로 빠지지 않도록 서로 간 관리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러-한 관계에 대해서는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걷고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최악의 상태는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내 과제는 러-한 관계를 최소한으로라도 유지하는 것"이라며 "긍정적 배경이 보다 많이 생길 수 있게 작은 발자국이라도 조금씩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양국 관계에) 좋은 효과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직통 항공편' 재개"라며 "문화·인문 분야에 있어서도 우리의 교류를 잇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에 온 지 5개월 가량 됐다. 한국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고 있나.

▶주한 러시아 대사로 부임하기 전에도 한국에 대해 '매우 흥미롭고 아름다운 나라'로 알고 있었다. 또 근면성, 친절한 성격을 가진 민족이 살고 있는 곳으로 알고 왔다.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는데 와보니 직접 그런 면이 확인됐다. 한국은 역시 매우 흥미롭고 아름다운 나라다. 나는 아직 대부분의 생활을 서울, 서울 근처로 하고 있지만 부산도 한 번 다녀왔다. 한국 여행과 관련해서는 큰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주말마다 직접 차를 운전해 서울 근교를 구경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지난 주말에는 강화도, 실미도를 구경하러 갔다 왔다. 경기도에 있는 아침고요수목원도 갔었는데 아름다웠다. 한국에 오래 있던 통역관도 모르는 수목원 위주로 다니고 있다. 스키 타는 것을 좋아해서 (겨울에는) 스키 타는 곳을 많이 갔다 왔다.

-올해 4월 26일 우리 대통령과 신임장 제정식을 가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따로 당부한 말이 있을까.

▶주최가 대통령실이었고 제정식 후 환담은 비공개였기 때문에 언급이 어렵다. 다만 제 전체적 평가를 공유하자면 신임장 제정식의 공개적인 부분, 그리고 대통령과 신임 대사들이 만나는 비공개 부분 모두 한국의 일반 의전 규칙에 따라 잘, 성대하게 이뤄졌다. 사실 (비공개 환담 때) 센세이셔널한 사건은 없었다. 대통령께서 '모든 대사님들이 한국에 있으면서 하고 있는 것들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길 기원한다'고 했고 우리는 사의를 표했다.

-현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나.

▶긴장이 고조되고 있고, 많은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은 모두가 이해를 같이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과 러시아는 긴장이 고조된 원인에 대한 진단은 조금 다르게 하고 있는 듯하고 긴장 완화와 관련한 방안 제안 또한 조금 다르게 하고 있는 듯하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말해보자면 나는 운이 좋아서 거의 평생 동북아 지역 나라들에 대해 전공을 했는데, 공부를 하다 보니 이 지역에 정말로 통찰력 있고 절제성 있는 민족들이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상황이 극도의 갈등으로 빠지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모든 역량과 능력을 갖고 있는 민족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점을 믿고 긴장이 고조돼 있는 현 단계가 잘 마무리 되고, 긴장 완화 단계로 접어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러시아-한국 관계에 대해 '비우호국 중 가장 우호적인 나라'라는 평을 내리기도 했다. 현 상황에서 다시 관계 진단을 해보자면.

▶'비우호국 중 가장 우호적인 나라'라는 표현은 한국에 오기 전에 했던 말인데, 그 표현 덕분에 한국 언론에 보다 큰 관심을 받게 됐던 것 같다. 사실 현재 러-한 관계와 몇 년 전 러-한 관계의 상황을 비교해보자면 양자관계가 어느 정도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걷고 있다는 것은 유감스럽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현 러-한 관계가 러시아-미국, 러시아-일본, 러시아-서방 관계와 비교해보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보게 된다. 즉 현 러-한 관계가 우리가 원하는 만큼 좋지는 않지만 최악의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평가할 수 있는 배경에는 러-한 관계의 문제가 내부적인 것이 아닌 외부적 요인이기 때문에 그런 듯하다. 이런 점을 감안해 낙관적인 마인드를 갖고, 우리 관계를 복원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어느날 산책 때 러시아 동포들이 날 알아보고 '러시아 국익을 수호하기 위해 (한국에) 좀 더 단호하고 강력히 말해달라'고 요청한 적도 있었다. 당시 나는 '대사의 과제는 양자관계가 보다 악화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관계 악화는 대사의 몫이 아닙니다'라고 말씀드렸었다. 당시 동포들에게 내놓은 대답처럼 내 과제는 러-한 관계를 최소한으로라도 유지하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의 관계를 안정화시키고, 유지하는 것으로, 보다 큰 관계 악화와 협력의 공간 축소를 막는 것이 과제다. 양자관계에 있어 긍정적 배경이 보다 많이 생길 수 있게 작은 발자국이라도 조금씩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환경이 조성될 때 우리의 관계를 복원하고 활성화시키는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저를 비롯한 우리 주한 러시아 대사관 직원들이 이런 마음을 갖고 일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자유홀에서 열린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서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러시아 대사로부터 신임장을 받은 뒤 기념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대사, 윤 대통령, 조태열 외교부 장관. (대통령실 제공) 2024.4.26/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5월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와 사안별로 협력할 건 협력하고 가급적 원만하게 경제협력과 공동의 이익은 함께 추구해 나가겠다"고 했다. 현재 한국과 러시아 간 경제협력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나.

▶대한민국은 러시아 입장에서는 늘 중요한 무역 상대국이었다. 러-한 교역량이 가장 좋은 시기(2022년)에 거의 300억 달러를 기록한 해도 있었고, 군사 분야까지도 협력이 이뤄진 바 있다. 그러나 한국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상호 교역량은 150억 달러로 이는 전년 대비 30% 절감된 수준이다.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는 수치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객관적인 현실이다. 그러나 이 상황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와 같은 상황 속에서는 큰 행보보다는 작은 발자국으로 진전이 이뤄지는 게 좋을 것 같다.

좋은 효과를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양국 간 '직통 항공편'을 재개하는 것이다. 사태(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가 일어난 후에 한국 측에서 직통 항공편을 중단했는데, 비행기가 오가는 것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항공편이 없어도 한국과 러시아 관광객들이 서로의 국가를 방문하고 있지만 조금 어렵게 하고 있다. 언젠가 한국 측이 보다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것을 희망하고 있고 한국 친구들이 아직도 러시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러시아는 여전히 인기가 있는 관광지이다. 문화·인문 분야에 있어서도 우리의 접촉을, 교류를 잇는 게 중요하다.

-한국 입장에서는 북한과 러시아 간 밀접한 관계가 형성되는 데 대한 우려가 높다.

▶러시아가 특별군사작전을 개시한 후에 대한민국은 대(對)러제재를 도입했고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 제재를 시종일관 확대, 강화해왔다. 북한은 이와 달리 국제무대에서 러시아를 전적으로 지지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남, 그리고 북과 평소와 다름 없는(business as usual) 관계를 가질 수 없었다. 이로써 러-한 관계는 악화됐고, 결과적으로 러-북 관계가 성공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러시아는 러시아의 국제 의무를 준수하고 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도 준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의무를 준수한다는 것이 북한과 협력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국제 의무와 유엔 안보리 의무는 북한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러시아는 러북 소통과 접촉이 대한민국의 안보를 겨냥하는 행위로 보고 있지 않다. 북한이 국제무대에서 보다 많은 친구를 만들게 되고 경제를 정상적으로 개발하고 민생을 개선한다면 그것은 한국의 안보, 한반도 정세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이 자신을 가지고 본국 안보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게 된다면 그것 자체가 역내 정세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본국 안보에 대한 위협을 느끼고 강압만 당하면 그것 때문에 한반도 정세가 위험해지기만 한다. 물론 이러한 러시아 입장은 한국 입장과 차이가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활동이 사실상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종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로써 대북 억제력이 약해져 한반도 평화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전문가 패널의 유무가 대북제재와 직접 연관되지 않는다. 만약 전문가 패널이 없더라도 그건 대북제재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다시 한국과 조금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전문가 패널의 활동이 객관적인 성격보다는 편향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전문가 패널이 활동을 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 데 효과를 보였는지, 북한의 방어력 강화를 견제하는 일에 효과를 보였는지', 이 질문에 대해 솔직한 답을 하자면 모두가 부정적인, 노(No)라는 답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이와 같은 질문은 전문가 패널 뿐만 아니라도 대북제재 자체에 대해서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북한에 대한 제재가 한반도 안전과 평화를 강화하는데 도움이 됐는지, 효과가 있었는지, 아니면 북한의 방어력 강화를 막는데 도움이 됐는지, 효과가 있었는지, 이 질문을 한다면 그 누구라도 다시금 '노'라는 부정적인 답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울러 전문가 패널이 지난해 만장일치로 출간한 마지막 보고서를 보면 '러-북 군사기술 협력을 증명하는 증거물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다. 하루 속히 종전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데.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 개시의 목표는 딱 하나다. 러시아의 안보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 안보를 보장하는 조건은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우크라이나의 비나치화, 우크라이나가 다른 블록으로 가입하지 않는 것을 보장하는 일이다. 우리는 애초에 장기간 전쟁을 할 계획이 없었다. 그래서 2022년 4월 우크라이나와 양자회담을 통해 키예프(키이우)도 러시아도 모두가 충족할 수 있는 협정안을 만들었는데, 서방이 간섭했다. 서방은 '전장에서 싸움을 통해 러시아를 항복시켜야 한다, 러시아와 싸워 승리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주장하는 평화공식을 보면 이름만 평화이지, 내용상 러시아에 대한 항복 조건들이다.

언젠가는 전쟁이 끝날 텐데 끝난 후 협상에서는 현실에서 일어난 '영토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영토 현실이란 2022년 도네츠크, 루한스크, 자포리자, 헤르손까지 4개 지역이 러시아로 통합됐다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 네 지역의 영토 일부가 현재 임시적으로 우크라이나 통제 하에 있다. 즉, 우크라이나의 침략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 헌법상 이 4개 지역은 러시아 영토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미래의 평화협정 조건을 논의하는 역할은 제 역할이 아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저밖에 할 수 없는 (러시아의 입장에 대한) 얘기들이 있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 언급을 한다.

-국제사회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미국이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다. 러시아는 미 대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미국에서 누가 당선되는지 우리는 상관없다. 그 누구든 괜찮다. 미국 국민이 누구를 뽑느냐는 것에 따라 러-한 관계 또는 러-중 관계가 달라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미국 국민의 선택일 뿐인데, 그래서 그 누가 되든 큰 상관이 없다. 주력 후보자들이 바이든 현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인데, 둘 다 우리가 이미 아는 분들이고 소통을 해봤던 것이니까 별로 큰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겪은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한국말로) 등산을 아주 좋아해요. 전 원래 등산을 많이 좋아한다. 겨울철에 북한산을 갔다 온 적이 있는데, 당시 아직 눈이 산에 덮인 때였다. 등산 중에 내 휴대전화가 떨어졌는데, 나중에 그 사실을 알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하다가 내 눈 앞에 보이는 한국 등산객들을 잡아서 '내 번호로 전화를 걸어주세요'라고 부탁을 했다. 그분들이 전화를 걸어주셨는데 벨소리가 안 들렸다. 산을 내려가면서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려고 하는데 그분들이 다른 쪽으로 가려고 했던 듯한데, 나와 같이 가겠다면서 동행하며 휴대전화를 찾아줬다. 저는 그날 정말 크게 감동했다. 이 인터뷰를 빌려 그날의 제게 도움을 주신 아버지와 아드님에게 인사를, 안부를 전하고 싶다.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가 14일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대사관에서 진행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5.14/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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