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격 슬로바키아 총리는 '친러' 거물…우크라 지원 반대로 4선 성공[피플in포커스]
EU·나토 일원·대러 제재 '난색'…"선출직은 국익·민심 좇아야"
반이민 고리로 극우와도 연정…유럽인권재판소 재직·유로화 도입
- 김성식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로베르토 피초(59) 슬로바키아 총리가 15일(현지시간) 괴한의 총격을 받은 사건을 두고 정치 폭력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면서 피초 총리의 그간 정치적 행보도 관심을 받고 있다. 그는 친(親)러시아 성향의 정치 거물로 우크라이나 지원 반대 여론에 힘입어 4선에 성공한 인물이었다.
로이터·AFP 통신에 따르면 피초 총리는 지난해 9월 치러진 슬로바키아 총선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 공약을 내걸었다. 그는 '총알 한 발도 줘선 안 된다'는 구호로 430만 슬로바키아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같은해 10월 △2006년~2010년 △2012년~2016년 △2016년~2018년에 이어 네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슬로바키아는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일원으로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자 상당한 양의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이전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되자 슬로바키아 국민들 사이에선 전쟁 피로감과 함께 러시아와의 관계 경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피초 총리는 민심을 기민하게 파고 들어 총선에서 정권을 탈환했다. 특히 슬로바키아처럼 EU·나토 회원국이면서도 서방의 대(對)러 제재에 반대 입장을 고수한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의 영향을 받았다. 피초는 선거운동 기간 로이터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오르반 총리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며 "유권자와 국익을 좇는 게 선출직 정치인의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좌파 성향인 스메르-사회민주당을 이끌면서도 이민에 대해 강경한 태도로 일관해 슬로바키아국민당(SNP) 등 극우 정당과도 줄곧 연립 정부를 구성해 왔다. 브라티슬라바 정책연구소의 미할 바세카 연구원은 로이터에 "피초는 슬로바키아에서 단연 최고로 손꼽히는 권력 기술자로 적수가 없다"라며 "항상 여론을 따르고 사회 변화를 잘 이해한다"고 전했다.
1964년 소련의 위성국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난 피초 총리는 노동자 가정에서 자라 1986년 수도 브라티슬라바의 코메니우스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공산 정부가 무너진 뒤 법무부 변호사로 활동했고, 공산당 후신인 민주좌파당(SDL) 소속으로 1992년 처음 국회에 입성했다. 1994년부터 2000년까지는 유럽인권재판소(ECHR)에서 슬로바키아 정부를 대표해 활동했다.
1998년 검찰총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민주좌파당은 다른 후보를 지지했고 결국 낙마했다. 이를 계기로 민주좌파당을 나와 1999년 스메르-사회민주당을 창당했고, 2006년 총선에서 당시 중도우파 정부의 자유주의 경제 개혁에 반기를 들어 선거를 압승, 처음으로 총리가 됐다. 1기 집권 당시 민족주의 정당들과 연립정부를 구성했지만 EU 가입 5년 만인 2009년 유로화를 전면 도입하는 등 유럽과의 관계 강화에도 공을 들였다.
2010년 연정에 실패하면서 실각했지만 중도우파 연립정부가 부패 혐의로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 상태에서 치러진 2012년 총선에서 또다시 압승했다. 시리아 내전으로 촉발된 난민 위기가 유럽을 휩쓸자 2015년부터는 반(反)이민 정책들 수립, EU의 회원국별 난민 할당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를 바탕으로 2016년 총선에서도 승리했지만, 2년 뒤 이탈리아 마피아와 피코 총리 간 유착 의혹을 취재하던 언론인이 숨진 채 발견돼 결국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피초 총리는 현지시각으로 이날 오후 2시 30분쯤 슬로바키아 중부도시 한들로바에서 내각 회의를 마친 뒤 건물 밖으로 나온 직후 괴한이 쏜 총에 맞았다. 토마스 타라바 슬로바키아 부총리는 피코 총리가 복부와 가슴에 총상을 입었으며, 이날 저녁 3시간 30분에 걸친 수술을 받은 끝에 위중한 고비는 넘긴 상태라고 밝혔다.
이날 현장에서 체포된 용의자는 슬로바키아 국적의 71세 시인인 것으로 확인됐다. 마투스 수타이 에스토크 슬로바키아 내무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용의자가 정치적 동기에서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일부 집단이 다수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인접국인 슬로바키아 러·우 전쟁이 발발하자 서방이냐 러시아냐를 두고 극심한 내부 분열에 휩싸인 상태였다.
seongskim@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