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건국은 '설탕' 때문"…세상을 바꾼 과도한 세금 [역사&오늘]

4월 5일, 미국 독립의 단초를 제공한 영국의 '설탕법' 가결

서인도 제도의 설탕 플랜테이션(출처: 작자 미상, 채색 삽화(1749), 미국 국회도서관 소장,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764년 4월 5일, 영국 의회에서 '설탕법'이 통과됐다. 영국 총리 조지 그렌빌이 주도한 이 법률은 미국 독립 전쟁의 중요한 단초가 됐다. 과도한 과세가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

영국은 7년 전쟁(1756-1763, 슐레지엔 땅의 소유권을 놓고 유럽은 물론 그 식민지까지 합세해 두 진영으로 갈려 싸운 대규모 전쟁으로, 이와 관련해 아메리카 대륙에선 영국과 프랑스가 프렌치-인디언전쟁을 벌였다)에서 승리했지만, 전쟁으로 인해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겪게 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 정부는 식민지에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고, 설탕법은 이 정책의 일환이었다.

이 법은 미국 식민지와 서인도 제도 간 무역을 영국령 서인도 제도로 제한하고, 여기서 수입하던 당밀(사탕수수나 사탕무를 설탕으로 가공할 때 부수적으로 나오는 찐득한 시럽)과 설탕에 높은 관세를 부과한 것이었다. 또한, 와인, 커피, 의류 등 다른 상품에 대한 관세도 인상했다.

이는 아메리카 식민지 상인들의 이익을 크게 침해하는 것이었다. 이에 분노한 식민지 주민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동의 없이 영국 의회가 일방적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설탕법에 대한 반발은 곧 조직적인 저항 운동으로 이어졌다. 식민지 주민들은 '자유 없이 과세 없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영국 상품 불매 운동을 벌였다. 또한, '자유의 아들들'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해 영국 세관을 공격하고 압류된 설탕을 해방하기도 했다.

설탕법은 결국 1765년 폐지됐다. 하지만 설탕법은 아메리카 식민지와 영국 간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때의 앙금이 채 해소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몇 년 후인 1773년 영국은 이번엔 아메리카 식민지에 차(茶)에 대한 새로운 세금을 부과했다. 이는 미국 독립 전쟁(1775-1783)의 방아쇠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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