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리더십과 천재적 외교술로 19C 독일 이끈 '철혈재상' [역사&오늘]

4월 1일, 독일제국 통일 주도한 비스마르크 탄생

오토 폰 비스마르크(출처: 브라운 에 콤파니, 흑백사진(1890년 이전),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15년 4월 1일,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태어났다. 프로이센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으로 독일제국의 통일을 주도한 인물이다.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의 귀족 가정에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하고 프로이센 정부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다. 1847년 프로이센 의회의 의원으로 당선된 후 보수적인 정치적 입장을 취했다. 그는 1862년 프로이센 의회에서 "현대의 문제는 연설이나 다수결로 해결될 수 없고, 오직 '철'과 '피'로만 해결될 수 있다"고 발언했다. 그를 가리켜 '철혈재상'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1864년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의 총리가 됐다. 그는 군대를 강화하고, 오스트리아와의 전쟁 (1866년) 및 프랑스와의 전쟁(1870-71년)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러한 일련의 성과를 통해 프로이센은 독일계 국가 중 가장 주도적인 국가로 부상했다.

1871년 1월 18일, 비스마르크의 주도로 마침내 독일제국이 통일됐다. 그는 초대 총리에 올라 부국강병을 추진했다. 또한 개신교가 지배적인 프로이센에서 분리되려는 가톨릭을 탄압하고, 사회주의를 억압했으며,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지본주의를 지원하고, 경제 발전을 장려했다.

비스마르크는 세력 균형과 현상 유지를 기본 전략으로 주변국들과 다각적이고 유연한 동맹관계를 맺었다. 이로써 라이벌 프랑스를 고립시키고 독일제국을 유럽의 패권국으로 만들었다. 그의 리더십은 강력했고 외교술은 능수능란했다.

1890년 비스마르크는 사회주의자 황제를 자처하던 빌헬름 2세에게 파면돼 정계에서 은퇴했다. 이후 독일제국은 황제의 독단에 의해 무모한 해외 진출을 도모하다 국제적 고립을 자초해 결국 1차 세계대전으로 치달았다. 비스마르크는 1898년 7월 30일 자신이 평생을 바쳐 이룩한 국제질서가 무너져 가는 것을 속절없이 바라보며 83세로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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