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타우러스로 크림대교 공격" 獨 녹취 폭로…왜?
러 언론인, 텔레그램에 폭로…타우러스 지원 무산이 목적인 듯
독일 국방부 "회의 내용 도청된듯"…러 "불구대천 원수"라며 비난
- 김성식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독일이 장거리 순항미사일 타우러스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해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대교를 폭파하는 방안을 논의한 녹취록이 러시아에 의해 폭로됐다. 러시아는 독일이 불구대천의 원수로 돌아섰다며 즉각 공세에 들어갔고 독일은 유출 경위 파악에 나섰다. 러시아가 이 녹취록을 문제삼은 것이 타우러스의 지원을 무산시키기 위한 고도의 계산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2일(현지시간) 로이터·AFP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방송 RT의 편집장인 마르가리타 시모냔은 전날(1일) 자신의 텔레그램에 독일군 고위 장교들이 타우러스를 사용해 크림대교 폭파를 모의했다며 38분 분량의 관련 녹취록을 공개했다.
크림대교는 2014년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직접 연결하는 유일한 도로다. 각종 전략 물자가 오가는 핵심 보급로 역할을 해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지금까지 두차례 교각이 붕괴되는 공격을 받았다.
시모냔은 녹취록에 대해 독일군 장교들이 지난달 19일 화상회의에서 나눈 대화라고 주장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회의 참가자들은 타우러스 100기를 두차례에 걸쳐 우크라이나에 전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크림대교 공격을 조율하기 위해 지난달 21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하는 일정과 타우러스 운용을 위해 우크라이나군을 직접 훈련시키는 방안도 거론했다.
타우러스의 우크라이나 지원은 독일 정부의 그간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5월 봄철 대반격을 앞두고 독일에 타우러스 지원을 공식 요청했지만 독일은 이에 난색을 보여왔다. 타우러스의 사거리가 500㎞에 달해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본토를 직접 공격할 수 있어서다.
일부 분석가들은 최근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둘러싸고 영국·프랑스와 충돌하고 있는 독일을 러시아가 서방의 약한 고리로 삼아 타우러스 지원을 무산시키기 위해 녹취록을 의도적으로 공개한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이날 독일 국방부는 녹취록 유출 사건과 관련해 독일 연방군사정보국(MAD)이 수사 중이며 실제 회의 내용이 도청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텔레그램에 유포된 녹취 일부는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로마를 방문한 올라프 숄츠 총리는 기자들과 만나 "심각한 사안인 만큼 신속하게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독일에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전방위적인 압박에 돌입했다. 전날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독일이 녹취록과 관련해 즉각 설명을 제공해야 한다며 "답변을 회피할 경우 유죄를 인정한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텔레그램에 "우리의 오랜 라이벌인 독일이 다시 불구대천의 원수로 변했다"고 적었다. 이날 튀르키예를 방문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러시아에 전략적 패배를 가하고 싶어 하며 진로를 바꾸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녹취록이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독일군 녹취록이 러시아의 국영 언론인을 통해 폭로된 건 다분히 의도적이란 해석이 나온다. 마리-아그네스 슈트라크-침머만 독일 의회 국방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독일 펑크 미디어 그룹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타우러스를 공급하는 것과 관련해 독일 정부가 일종의 경고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사거리 250㎞의 공대지 순항미사일 '스톰 셰도'와 '스칼프'를 각각 지난해 5월과 7월 우크라이나에 보냈다. 반면 독일은 타우러스 지원을 머뭇거리면서 서방은 물론 독일 야당의 지원 압박에 직면한 상황이다.
숄츠 총리는 지난달 26일 타우러스 지원에 대해 "장거리 무기인 만큼 영국과 프랑스가 우크라이나에서 수행하는 표적 지원은 불가하다"며 "우리가 같은 방식으로 표적 공격에 참여한다면 이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거듭 일축했다. 그러나 입장 표명 과정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스톰 셰도·스칼프 운용을 위해 우크라이나에 군 병력을 파견한 사실을 암시하면서 외교적 마찰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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