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동성 결혼 합법화…"정교회 국가 최초"
찬성 176표·반대 76표…"그리스 인권의 이정표"
그리스 정교회 반발…전통적 가족관 강조
- 정지윤 기자
(서울=뉴스1) 정지윤 기자 = 그리스 정부와 의회가 정교회 국가 최초로 동성 간 결혼을 합법화했다.
1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그리스 의회는 키리아코스 미초타미스 총리가 이끄는 신민주주의당(ND)이 제출한 동성간 결혼 합법화 법안을 재적 의원 300명 중 245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176표, 반대 76표로 승인했다. 유럽연합(EU) 중에선 16번째이지만 정교회 국가 중에선 최초다.
이에 따라 그리스의 동성 연인들은 혼인과 자녀 입양이 가능해진다. 동성 부부의 자녀들은 교육이나 의료 등 각종 사회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그리스에서는 이전에는 생물학적 부모가 아닌 이들은 자녀의 의료적 절차를 결정할 권리가 없었다. 게이 부부들은 친모의 이름을 입력해야만 자녀가 주민 등록을 하고 사회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이 법안은 오늘날의 그리스를 보여주는 인권의 이정표"라며 "많은 사람의 삶에서 아무것도 빼앗지 않으면서 상당수 시민의 삶을 크게 향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에서 법안이 통과되려면 300명의 재적 의원 중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법안은 총리가 이끄는 당 조차도 완전히 찬성 목소리를 내지 않아 통과가 불투명했다. 158석의 중도 우파 성향의 신민주주의당 소속 의원들 일부는 이 법안에 기권하거나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그리스 제1야당인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당 대표이자 동성애자인 스테파노스 카셀라키스를 필두로 야권과 일부 여당 의원들은 정당을 넘어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다만 전통적인 가족상을 옹호하는 정교회의 입김이 강한 그리스 내에선 여전히 반대 의견도 강하다.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정교회 교인들은 강력히 저항했다. 그리스 정교회는 "이 법안은 부성과 모성을 없애고 성별을 중립화한다"며 "어린이들에게 혼란스러운 환경을 조성한다"고 말했다. 교회 단체들 또한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며 법안에 반대했다.
성소수자들도 이 법안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리스는 해외에서 이미 대리모 임신을 통해 태어난 아기들을 인정하는데, 이 규정은 성소수자 부부에게는 확대되지 않을 예정이다. 트랜스젠더에게도 부모로서의 권리가 부여되지 않는다.
그리스의 성소수자들은 오랜 기간 동안 교회와 우파 정치인들에 맞서 변화를 촉구해 왔다. 2008년에는 레즈비언과 게이 커플이 그리스의 작은 섬인 틸로스에서 결혼했지만 이후 최고 법원에 의해 결혼이 무효가 됐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들어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2015년에는 동성 연인들의 사실혼 관계를 인정했고 2017년에는 자발적인 성별 결정을 법적으로 인정했다. 2022년에는 미성년자의 성적 지향을 억압하는 전환 치료를 금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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