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작가 '정희기·정민기 듀오전' 성황리에 암스테르담 상륙[통신One]
스토리가 풍부한 K-미술, 보고 또 봐도 새롭다
세계를 사로잡을 K-미술, 잠재력 이어나가려면
(에인트호번=뉴스1) 차현정 통신원 = 반 고흐, 렘브란트, 요하네스 페이메르 등을 낳은 세계적인 미술 거장의 나라 네덜란드가 급부상하는 K-미술에 주목하고 있다. 하루 종일 미술관만 둘러봐도 성에 차지 않을 정도의 세계 정상급 미술관들이 가득한 암스테르담에 한국 작가들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개관한 지 며칠도 되지 않은 암스테르담의 엔서울(ENSEOUL) 갤러리에는 두 한국 작가들의 전시를 보기 위해 아침부터 몰려든 네덜란드 시민들로 가득 차 있다.
"전시가 소개되고, 현지의 많은 관객이 그림 앞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감상을 전하며 구체적인 소견을 나눴다는 점이 한국과 많이 다른 부분이었습니다. 네덜란드 관객들이 느낀 감정을 스스로 분석해서 저에게 말해줄 때의 교감은 잊을 수 없습니다."
정민기 작가는 네덜란드 관객들과 주고받은 작품 이야기를 하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이에 정 작가는 작품에 사용한 고유의 기법을 잘 읽어내고 고유성을 짚어내는 네덜란드 관객들의 문화적 수준에 감탄하며 이는 현대 미술의 흐름과 작품 활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한 부분이라며 감탄했다.
한국 떠오르는 작가들에 초점을 맞추어 좋은 작품 소개는 물론이고, 작품관과 세계를 그대로 담아내고 표현하는 공간으로 암스테르담에 베이스를 둔 한국 미술 갤러리 엔서울의 박규원 관장은 네덜란드에서 유학 후 글로벌 기업에서 PR과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일한 경험을 살려 자유, 표현, 잠재성이 폭발하는 한국 미술 시장의 한국 작가들의 창조성을 네덜란드에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박 관장은 해외 생활을 오래 하면서 모두를 하나로 잇는 것은 바로 예술, 그중에서도 미술이라는 생각에 여러 아트페어와 전시기획 경험을 오래 쌓으며 준비해 왔다. 그는 "가장 한국적이고 익숙하면서도 독창적인 작품을 소개하고 싶었는데, 그 첫 전시가 바로 정희기, 정민기 작가들이었다"며 작품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스토리가 풍부한 K-미술, 보고 또 봐도 새롭다
실이라는 미디어(미술에서 쓰는 작품의 기법 혹은 재료를 칭하는 단어)를 사용해 자유롭게 작업하는정희기와 정민기 작가는 작품에 담긴 이야기들을 실타래 풀 듯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페인팅, 드로잉, 설치와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두 작가의 작품은 특히나 재봉틀이라는 도구를 적극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눈길을 끌었다.
정 작가는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관객들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작품 앞에 오래 머무르셨다"며 "보고 또 봐도 새롭다는 평가는 작가에게 찬사"라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재봉틀을 사용하는 것은 굉장히 까다롭고 붓에 비해 제약이 따른다. 내 뜻대로 자유롭게 재봉틀을 통해 작품 활동을 한다는 것은 작가와 재봉틀이 물아일체가 돼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시간과 노력을 통해서만 이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에 네덜란드 관객들은 환호했다. 재봉틀과 함께 숨 쉬고 하얀 무명천에 담아내는 그들만의 세계관은 한 편의 시와 같고 음악과도 같았다는 호평이 가득하다.
둘을 서로 너무 잘 알고 이해하는 남매 작가인 정희기, 정민기 작가는 어릴 때 러시아에서 거주했던 경험이 있었다. 낯선 땅에서 친구도 없이 남매끼리 의지하던 정희기 작가는 우연히 선물로 받은 코코아는 코알라 인형에 애착을 갖게 됐다고 한다.
정 작가는 어느 날 인형을 잃어버린 후 큰 상실감을 느꼈는데, 그것이 바로 첫 개인전 '코코를 찾아서 (Finding KOKO)'로 연결되는 시작점이 됐다고 회상했다. 사진과 추억 속 코코 인형을 광목에 프린트해 이곳저곳 세계를 여행하며 사진을 찍었고, 어린 시절 낯선 환경에서 위로받았던 따스한 경험을 천의 부드러움에 녹여내는데 집중했다.
씨실과 날실로 직조돼 짜인 천은 수많은 점이 교차하며 이루어진 세계가 됐고, 천이라는 소재가 주는 포용성과 유연성은 작가에게 중요한 키워드로 다가왔다.
어린 시절 엄마의 재봉틀을 보고 원단 위에 드로잉을 하며 평면과 입체 작업을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정민기 작가는 항상 가장 한국적인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 답을 찾아 한반도를 다니다 만난 울진의 반구대 암각화를 떠올렸고, 선사시대의 한 무명작가가 기록한 일상의 풍경에 영감을 받았다. 그는 재봉틀로 다양한 실험적 작품을 시도하며 공존, 조화, 화합과 화해에 대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세계를 사로잡을 K-미술의 잠재력을 이어나가려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파리와 런던, 뉴욕에 앞서 미술 시장의 호황을 누리던 곳이다. 어른 아이 노인 할 것 없이 주말이면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세계적인 거장들의 미술품을 원 없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나 네덜란드에는 뮤지엄 카드라는 제도가 있는데, 이는 연간 회비(성인-한화 9만 원, 만 18세 이하 -한화 4만5000원)를 내면 네덜란드 전역의 450개가 넘는 미술관과 박물관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
네덜란드 미술관은 그림을 단순히 구경하는 공간이 아니다. 가장 유명한 요리사의 최고 수준의 음식은 바로 미술관에 위치한 식당과 카페에서 만날 수 있고, 어린이들을 위한 미술 수업은 미술 학원이 아닌 미술관에서 생생하게 이뤄진다.
주말 한가로운 시간을 즐기기 위해 미술관을 찾는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로 암스테르담의 미술관은 생기가 넘치고, 수장고 콘셉트를 그대로 적용한 실험적인 로테르담의 미술관은 연일 관람객으로 넘쳐난다.
미술은 생활이고 삶의 일부가 된 네덜란드에서 앞으로 K-미술은 어떻게 성장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박 관장은 "네덜란드 관객들은 한국 미술 시장의 구매자와는 다르게 작가의 명성보다는 마음에 끌리는 작품을 소장하고 싶어 한다"며 "일반 대중과 애호가 모두를 사로잡으려면 누구에게나 진심에 닿는 한국적인 작품 소개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올해 미술 한류 원년을 선포하며 본격적인 지원을 이어나가고 있다. 문화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짝하고 사라지는 정책이 아니라, 한국 작가만이 들려줄 수 있는 개성 넘치는 한국적인 K-미술의 저변 확대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chahjlisa@gmail.com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