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큰 별' 英 엘리자베스 2세 서거…70년 여왕의 시대 막 내리다
왕위 계승 3위서 英최장수 군주로…15명 총리 배출·韓과 깊은 인연도
찰스 왕세자 낮은 지지율·왕실 폐지론도 솔솔…여왕 이후 왕실 운명은
- 정윤미 기자
(서울=뉴스1) 정윤미 기자 = '살아있는 현대사'가 막을 내렸다. 8일(현지시간) 전 세계 가장 오랜 통치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유명을 달리했다. 향년 96세. 영국 최장수 재위 군주이자 1920년대생 국가 지도자급 인사로는 유일 생존자였던 그는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아들 찰스 왕세자와 윌리엄 왕세손 등 온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은 없다…그것이 곧 여왕의 운명
1953년 6월2일 런던 버킹엄궁에서 여왕의 대관식이 거행됐다. 직전 해 2월6일 부친 조지 6세가 서거한 날 즉위했지만 선왕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애도 기한을 두는 왕실 전통에 따라 대관식은 16개월 이후 치러졌다. 당시 여왕의 나이 스물다섯 살.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몰랐을 것이다. 얼마나 오래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지. 그렇게 여왕은 지난 6월 재위 70주년 기념식 '플래티넘 주빌리'를 맞이했다. 영국 국왕 최초며 유럽 군주로 프랑스 루이 14세(72주년), 리히텐슈타인 요한 2세(70주년) 이후 세번째다.
1926년 4월21일 여왕이 태어났을 때까지만 해도 훗날 그가 군주가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큰아버지 에드워드 왕세자, 아버지 앨버트 왕자에 이은 왕위 계승 서열 3위로 그의 출생은 대중의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 뿐이었다. 방계 공주였던 데다 당시 왕세자 나이는 향후 자손을 낳기에 충분히 젊은 나이었기 때문이다. 1936년 조지 5세 사망으로 즉위한 미혼의 에드워드 왕세자는 재혼 경력이 있는 미국인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 왕실 법도와 내각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생에게 양위했다. 부친의 즉위로 여왕은 단숨에 왕위 계승 서열 1위에 올라섰다.
◇살아있는 현대사…여왕의 시대와 함께한 대한민국 정부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달했던 1945년. 18살의 엘리자베스는 조지 6세 허락받고 공주 신분으로 육군여군(ATS)에 입대했다. ATS는 후방 병참 지원부대로 그는 이곳에서 운전병과 정비공으로 복무했다. 비록 종전까지 3주간의 복무였지만 그는 왕실 최초 현역 입대한 여성이다. 즉위 이후 여왕은 1965년 처음으로 서독을 방문해 2차대전 이후 양국 화애의 물꼬를 텄다. 대영제국 최후로 평가받는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지켜보며 제국의 종말을 맞이했다. 이 밖에도 2014년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투표 사태,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등 영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모두 겪었다.
여왕은 윈스터 처칠을 시작으로 마거릿 대처, 테리사 메이, 리즈 트러스 등 세 명의 여성을 포함해 총 15명의 총리를 배출했다. 영국 총리의 주요 정치적 업무 중 하나로 매주 여왕을 알현해 현안 보고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왕은 좀처럼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아 현대 왕가의 귀감이 되고 있다. 여왕의 마지막 총리 임명식은 재위 기간 처음으로 버킹엄궁 아닌 밸모럴성에서 지난 6일 치러졌다. 거동의 불편을 이유로 이곳에서 지내왔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이승만(1875~1965)부터 윤석열(62)까지 역대 한국 대통령과 역사를 함께했다. 영국에서 직접 여왕을 만난 대통령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노무현, 박근혜 총 5명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9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여왕 내외를 직접 맞이했다. 당시 여왕의 방한은 1983년 한·영 우호통상조약 체결 이래 영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이었다. 당시 여왕은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서 73번째 생일상을 받았는데 지금도 안동시는 매년 여왕 생일에 맞춰 안동 사과를 영국 왕실에 보낸다고 한다.
◇세기의 사랑·최장수 왕세자…영국 왕실의 운명은
여왕은 지난해 4월9일 부군 필립공(99)을 먼저 떠나보냈다. 그렇게 74년간 '세기의 사랑'도 막을 내렸다. 그리스·덴마크의 왕자였던 필리포스 왕자는 여왕의 첫사랑이었다. 2차대전이 발발한 1939년 13살 엘리자베스는 다트머스의 왕립 해군사관학교에서 재회한 5살 연상 필리포스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이후 필리포스가 참전함에 따라 둘은 서로 편지로 사랑을 주고받았고 전쟁이 끝나고 1947년 마침내 결혼에 골인했다.
필리포스는 엘리자베스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영국으로 귀화해 영국식 이름인 '필립 마운트배튼'으로 개명했다. 결혼 생활 5년 만에 조지 6세가 타계하면서 여왕은 즉위했다. 그로부터 필립공은 한 여자의 남편 아닌 영국의 국서이자 국모의 남자로 일평생 묵묵히 외조하며 그의 곁을 지켰다. 그는 생전 우스갯소리로 자신을 가르켜 "세계 최고 현판 제막식 전문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여왕과 필립공 사이에는 슬하 3남 1녀가 있다. 찰스 왕세자와 두살 터울의 앤 공주 즉위 이후 태어난 앤드루와 에드워드 왕자다. 결혼 이듬해인 1948년 태어난 장남 찰스 왕세자(74)는 본의 아니게 최장수 왕세자가 됐다. 1969년 공식 왕세자로 책봉된 이래 왕위 계승 대기 기간만 무려 53년째다. 그는 불륜으로 다이애나비와 이혼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후 찰스 왕세자는 여왕과 달리 왕세자에 대한 영국의 시선은 그리 달갑지 않다. 현재는 장남 윌리엄 왕세손(40) 보다도 지지도가 높지 않다. 영국 여론조사업체 유고브에 따르면 '여왕 이후 왕위 계승 적격자'로 윌리엄 왕세손은 2020년 6월부터 줄곧 찰스 왕세자보다 앞섰다. 다만 왕세손 지지율도 37%대로 불과해 과반을 넘는 여왕의 지지율에는 못미친다. 그 가운데 최근 영국에서는 '왕실 폐지론'이 불거지면서 여왕의 시대 이후 왕실의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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