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그림자 속에서 치러진 참혹한 국제 대리전 [역사&오늘]

11월 1일, 베트남전쟁 발발

베트남전쟁. (출처: Derived from: George L. MacGarrigle. CMH Pub 91-4 Combat Operations: Taking the Offensive, October 1966 to October 1967. Washington, D.C., U.S. Army Center Of Military History, 1998, p. 176.,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55년 11월 1일, 베트남전쟁이 일어났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베트남 독립전쟁, 1946~1954) 이후 분단된 남북 간의 내전이었다. 냉전 시대에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한 대리전쟁의 성격도 지녔다.

20세기 중반,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이후 남북으로 갈라져 북에는 호찌민을 대통령으로 하는 베트남 민주공화국이 들어서고 남에는 프랑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황제 바오 다이를 총리로 하는 베트남 공화국이 수립됐다.

미국은 베트남이 공산화된다면 주변 국가들도 차례로 공산화될 것이라는 '도미노 이론'을 주장하며 남베트남을 지원했고, 북베트남은 통일을 위해 무장 투쟁을 벌였다. 결국 1964년 8월 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미국이 참전했다. 한국도 미국의 요청에 따라 같은 해 월남 파병을 단행했다. 태국, 필리핀, 호주, 뉴질랜드도 전부병력을 보냈다. 소련도 북베트남을 지원하며 맞대응했다. 이로써 내전은 대리전쟁이 됐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에 점차 더 많은 병력과 물자를 투입하며 개입 규모를 확대했다. 맹렬한 공중 폭격과 정글 섬멸 작전 등을 통해 북베트남을 압박했지만, 베트콩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쉽게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남베트남에서는 정치권에서 부패와 권력 암투가 끊이지 않고 국민의 힘을 단합하지 못했다.

전쟁이 지속되고 미군의 희생이 늘어가자 미국에서는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세지고 대규모 반전 시위가 벌어졌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전쟁의 부당성을 비판하고 평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미군은 1969년부터 단계적으로 지상군 철수를 시작했다.

1973년 파리 평화협정 체결로 베트남전쟁은 종식됐다. 미군도, 한국군도 완전히 떠났다. 무주공산이 된 남베트남은 2년 후인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북베트남에 함락되며 적화통일됐다. 지도층은 다수가 서방 세계로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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