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빈국 방글라 임시 정부 이끌 '빈민의 은행가' 유누스[피플in포커스]
2006년 노벨 평화상 수상…가난한 이들을 위한 은행 설립
- 신기림 기자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손꼽히는 방글라데시에서 빈민의 은행가로 통하는 무하마드 유누스(84)가 임시 정부를 이끌 것으로 보인다. 셰이크 하시나(76) 총리는 공무원 할당제에 반발한 시위대의 퇴진 요구에 결국 축출돼 이웃나라 인도로 피신했고 시위대는 빈민의 은행가 유누스를 소환했다.
하지만 유누스 앞에 놓인 과제는 산적했다. 지난 몇 주 동안 반정부 시위로 300명 넘게 목숨을 잃은 방글라데시에서 역대 최악의 폭력사태 이후 정상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의류수출로 수 백만명이 빈곤에서 탈출했지만 최근 방글라데시는 경제 성장이 정체되면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가 됐다. 게다가 방글라데시는 1971년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수 차례 군사 쿠데타를 겪으며 군부 통치기간으로 대립적 정치 문화가 뿌리 깊지만 경제학자 출신의 유누스는 사실상 정치 경험이 전무하다.
지난 2007년 '시민의 힘'이라는 정당을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현실로 옮기지는 못했다. 하시나 전 총리는 과거 유누스의 대중적 인지도를 깎아 내리기 위해 그에 대해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 먹는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또 유누스는 100건이 넘는 형사 사건과 국가 주도 이슬람 기관의 명예훼손 캠페인에 시달렸고, 2011년에는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정부는 그를 그라민 은행에서 강제 퇴출시켰다.
하지만 유누스는 세계 최빈국 사람들에게 소액 사업 대출을 제공하는 그라민 은행을 1983년 설립하고 마이크로 크레딧(미소 금융) 시장을 개척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은행가로 알려진 그는 농촌 여성들에게 소액 대출이나 농기구, 사업장비에 투자하고 수입을 늘릴 수 있도록 한 공로로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로 통하며 방글라데시의 국민적 지지를 받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0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후, 그의 연설을 듣기 위해 수천 명의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행사장을 가득 메웠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그를 보면 고개를 숙이고 가슴을 만진다. 지난 10년 동안 유누스는 가난한 방글라데시 사람들에게 무료 의료 서비스, 직업 훈련, 전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포함해 수십 개의 사회적 기업을 확장하는 데 주력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유누스는 1974년 방글라데시에 기근이 닥쳐 수십만 명이 사망했을 때 치타공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던 경제학자였는데, 대학 인근 마을에서 대부업자로부터 돈을 빌린 한 여성을 만나게 되면서 마이크로 크레딧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 여성은 1달러도 되지 않는 돈을 사채업자에게 빌렸다가 사채업체와 사실상 노예 계약을 맺어버렸다. 유누스는 노벨상 수락연설에서 "노예 노동력을 모집하는 방법"이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유누스는 사채업자에게 모두 27달러를 빌린 42명을 찾아내 직접 돈을 빌려 줬고 이를 계기로 그는 신용을 인간의 기본 권리로 여기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을 세우게 됐다. 그는 당시 "대출을 해주고 나서 결과에 놀랐다"며 "가난한 사람들은 매번 제때 대출금을 갚았다"고 말했다.
2020년 가장 최근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유누스의 그라민 은행은 현재 900만 명 이상의 고객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출자의 97% 이상이 여성이다. 유누스는 평생의 업적으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수여한 자유 훈장을 비롯해 수많은 상을 받았다.
유누스가 확실하게 방글라데시를 이끌 지도자로서 정계에 입문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선거가 치러지기 전에 임시로 정부를 맡겠다는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최근 몇 주 동안 시위대가 몰려들자 유누스는 공개적으로 폭력에 반대하고 하시나의 탄압을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했지만, 새 정부를 구성하는 데 더 공식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야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올해 초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자신이 "정치인이 아니다"라며 폭력시위와 정부의 탄압을 반대하는 것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고 말했다.
shink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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