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모디, 진땀승으로 3연임…'무적의 아우라' 큰 타격[딥포커스]

"모디, 정당보다 인기 많은 지도자…브랜딩 탁월"
'단독 과반' 실패한 모디, 연정·야당 요구 수용할까

4일(현지시간) 인도 총선 개표 결과가 확실시되며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이끄는 인도국민당(BJP)이 240석을 확보한 가운데 인도 뉴델리에서 모디 총리가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4.06.04 ⓒ AFP=뉴스1 ⓒ News1 김예슬 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이제 무적의 아우라를 잃었다".

인도에서 18대 연방 하원(록 사바·Lok Sabha) 의원을 선출하는 6주간의 마라톤 투표가 끝났다.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국민당(BJP)이 단독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한 것은 물론 BJP 주도 국민민주연합(NDA)도 293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모디 총리가 내걸었던 '400석 압승'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를 두고, 정점을 찍었던 모디 총리의 힘도 쪼그라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4일(현지시간) 인도 현지 매체를 종합하면 아직 1개 선거구에서 개표가 남아 있는 가운데, 선거관리위원회는 총 543개 의석 중 모디 총리가 이끄는 BJP 중심 여당 연합인 NDA이 최소 293석을, 제1야당 인도국민회의(INC)가 주도하는 야권 정치연합 인도국민발전통합연합(INDIA)은 최소 232석을 확보한 것으로 집계했다.

BJP는 지난 2019년 선거에서 연합이 아닌 단독으로 303석이나 확보하는 쾌거를 거뒀으나, 이번 선거에서는 63석이나 줄어든 240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모디 총리가 집권한 2014년 이후 BJP가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모디 총리를 필두로 한 BJP는 연합이 543석 중 400석을 확보한다는 목표(ab ki baar, 400 paar) 하에 선거 캠페인을 진행해 왔다. 선거가 진행된 6주 동안, 심지어 개표 직전 주말까지만 하더라도 출구조사는 목표 달성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특히 이번 선거로 모디 총리가 3연임에 성공할 경우, 자와할랄 네루 초대 총리 이후 처음으로 '3연임 총리'가 탄생한다는 점에서도 관심이 쏠렸다.

4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지자들에게 양 손으로 V자를 그리며 화답하고 있다. 2024.06.04/ ⓒ 로이터=뉴스1 ⓒ News1 권진영 기자

◇"모디, 정당보다 인기 많은 지도자…브랜딩 탁월"

모디 총리는 당 위에 있는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 식민지를 벗어난 인도를 세계 5위 경제 대국으로 올린 그는 경제성장과 자신감의 아이콘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도 차(茶)를 팔던 상인에서 정치 권력 최고점에 이르며 인도 국민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었다.

미 외교 전문 매체 포린폴리시(FP)는 "BJP의 유일한 강점은 지도자인 나렌드라 모디"라며 "그의 인기는 소속 정당의 인기보다 훨씬 높았다"고 전했다.

모디 총리 측에서도 집권 기간 이 이미지를 적극 활용해왔다. 인도가 지난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했을 때, 인도 길거리에는 모디 총리의 얼굴로 가득한 포스터가 넘쳐났다. 모디 총리는 기자회견을 한 적도 없고, 인터뷰조차 매우 드물게 응했다. 네러티브를 제어해 '카리스마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BBC는 "모디는 그의 당의 가장 큰 매력"이라며 "모디는 세계에서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가장 많은 정치인"이라고 보도했다.

브랜드 구축 전문가인 산토시 데사이는 2017년 칼럼에서 "그는 명확성과 강인함의 아우라로 깊은 심금을 울리고, 불안과 열망을 동시에 말하고, 은유를 사용해 소통한다"며 "활동과 목적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브랜딩 핵심 이니셔티브의 힘을 이해하고, 수수께끼 같은 침묵의 힘을 알고 있다"고 모디 총리라는 '브랜드'를 극찬했다.

인도 뉴델리에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지지자들에게 연설하며 검지를 치켜올리고 있다. 2024.05.22/ ⓒ 로이터=뉴스1 ⓒ News1 권진영 기자

◇'단독 과반' 실패한 모디, 연정·야당 요구 수용할까

그러나 총선 결과가 보여주듯 '모디'라는 브랜드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미국 외교안보 싱크탱크 윌슨센터의 아시아 프로그램 부국장 마이클 쿠겔만은 영국 가디언에 "모디는 여전히 매우 인기 있는 정치 지도자임이 분명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정치적으로 무적의 인물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정상에서는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모디 총리가 자신의 앞에 놓인 내리막길을 어떻게 헤쳐나갈지가 관건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자신의 권력에 대한 도전을 물리치려는 노력을 더욱 강화할 것인지, 아니면 연합 파트너와 협력할 것인지 등 모디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불확실하다"고 보도했다.

240석을 확보한 BJP가 하원 과반(272석)을 차지하려면 32석이 더 필요하다. BJP가 주도하는 NDA가 293석을 확보하긴 했지만, NDA 내부에서도 모디 총리의 힌두 민족주의를 두고 마찰이 있는 만큼 '모디 3.0'이 탄력받기 위해서는 연정 내부의 갈등 봉합이 중요하다.

쿠겔만 부국장도 "앞으로 나아갈 질문은 이 새로운 현실이 그의 거버넌스와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다"라며 "모디가 자신의 야망을 일부 축소하기로 결정할 것인지 주목된다"고 전했다.

특히 남부 안드라르프라데시주(州)의 텔루구데삼당(16석)과 동부 비하르주의 자나타달당(12석)이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NYT는 "두 정당 모두 종교와 관계 없이 친(親)대중적인 정당이라, 모디 반대파에서는 이 두 정당이 모디의 힌두 민족주의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고 있다"고 평가했다.

4일(현지시간) 인도 벵갈루루에서 나렌드라 모디 현 총리를 간판으로 하는 인도국민당(BJP)의 지지자들이 당 사무실 밖에서 인도 총선의 초기 투표 결과를 보여주는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2024.06.04/뉴스1 ⓒ 로이터=뉴스1 ⓒ News1 조소영 기자

◇집권 10년 경제 성장 이면에는 '불평등'…모디노믹스 제동

불평등·실업·인플레이션 등 경제 문제가 표심을 흐든 것으로 분석되는 가운데 '모디노믹스'에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모디노믹스' 아래에서 인도 경제가 성장했을지 몰라도, 정작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제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는 점이 투표 결과에도 작용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모디 총리 집권 이후 인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연평균 4%를 넘고, 2014년 세계 10위던 GDP는 지난해 5위를 기록했다. 모디 총리는 2029년까지 인도 경제를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같은 비약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모디 총리의 경제 정책은 노동자들을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고, 불평등·실업·불완전 고용을 늘렸다는 비판을 받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정치 분석가들은 많은 사람들이 경제 문제에 대한 불만에 투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며 "유권자들은 화려한 억만장자 거물들이 거주하는 세계 경제 강국 중 하나라는 이미지와 수억 명의 국민이 실업과 인플레이션에 직면해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이미지 사이에서 단절을 느꼈다"고 보도했다.

BBC도 "정부 지출에 힘입어 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불평등은 증가하고 있다"며 "야망과 좌절로 가득 찬 나라에서 젊은 유권자들은 BJP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델리에 거주하는 22세 구직자 수미트 쿠마르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나는 이번 결과에 만족한다"며 "모디가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에게 투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분석가들은 여론과 연정, 야당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모디 총리가 기업의 고용 유연성을 높이는 노동법 개혁 등을 연기해야 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SOAS) 남아시아 연구소 수비르 신하 소장은 가디언에 "이제 모디의 손은 연합 파트너들에 의해 묶일 가능성이 높고,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울 것"이라며 "그에게 앞으로의 길은 험난하다"고 말했다.

정치 평론가 아라티 제라스는 AFP통신에 "노동·토지 개혁 등 급진적인 개혁은 새 정부가 매우 천천히 진행해야 할 것"이라며 "연립 정부의 압박 외에도 훨씬 더 강력한 야당이 있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모디 총리는 첫 번째 임기 당시, 산업 통로·농촌 주택 건설 및 농촌 전화, 국방 목적의 토지 매입 등을 용이하게 하는 법안을 추진하려다 야당의 거센 저항으로 계획을 보류한 바 있다.

yeseu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