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고령' 정대영 "45세까진 거뜬"…중1 딸은 "저는 못해요"
42세에 FA 계약 맺은 정대영…딸 김보민도 제천여중서 활약
정대영 "어린 친구들 보면 딸 같아"…보민 "롤모델은 김연경"
- 권혁준 기자
(가평=뉴스1) 권혁준 기자 = "FA 계약했으니까 45세까지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정대영)
"저는 엄마만큼 오래는 못할 것 같아요."(김보민)
정대영(42·GS칼텍스)은 여자배구의 '살아있는 역사'다. V리그가 출범하기도 전인 1999년 현대건설에 입단한 그는 실업 무대와 프로를 통틀어 24년째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전성기 시절의 정대영은 공수 만능의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 미들블로커 포지션임에도 득점을 도맡아하는 것은 물론, 블로킹와 리시브 부문까지 1위를 독식했고, '후위공격이 가능한 센터'로 리그를 폭격했다. 김연경(흥국생명) 이전의 여자 배구 '톱플레이어'였던 셈이다.
그런 그의 '2세'도 배구를 시작했다. 제천여중 1학년에 재학 중인 김보민양(13). 엄마의 DNA를 빼닮은 것인지, 175㎝의 신장으로 또래 선수들보다도 큰 키를 자랑하는 김보민은 배구 정식 입문 2년만에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잡았다.
최근 뉴스1과 만난 정대영-김보민 모녀는 여느 모녀 지간과 다르지 않았다. 엄마의 경기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면서도, 엄마만큼 오래 뛰지는 못하겠다고, 엄마가 대단한 선수라고 하면서도 롤모델(본보기)로 김연경을 말하는 사춘기 딸. 엄마는 그런 딸도 한없이 귀엽게만 보는 모습이었다.
정대영에게 딸은 누구보다도 소중한 존재다. 딸을 출산했던 2010년 당시만 하더라도 여자 선수에게 결혼과 출산은 곧 은퇴를 의미했다. 여자 선수의 은퇴 시기가 빠르면 20대 후반, 길어도 30대 중반을 넘기지 못했던 시기였다.
이같은 통념을 깨부순 것이 정대영이었다. 딸을 출산한 뒤에도 빠르게 팀에 복귀한 그는 출산 후 1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리그 최고의 미들블로커로 활약 중이다. 이후 김해란(흥국생명) 등 출산 후에도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이들이 적지 않아졌다.
정대영은 "사실 20대 중반이면 은퇴해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V리그가 출범하면서 그 시기가 늦어졌다"면서 "그다음엔 임신과 출산이 예정되면서 당연히 은퇴를 생각했는데, 당시 소속팀이던 GS칼텍스에서 '기량이 아깝다'며 몇 년 더 해보자고 했다. 그러다보니 여기까지 왔다"며 멋쩍게 웃었다.
김보민은 또래보다 다소 늦은 초등학교 6학년에야 배구에 입문했다. 엄마 정대영의 입문 시기(중1)보다는 1년이 빨랐지만 다른 또래보다는 다소 늦은 시기였다.
정대영은 "내가 늦게 시작해서 그런지 딸도 너무 빨리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클럽 배구만 취미로 하고 있었는데, 기본기 차이가 너무 벌어지는 것 같아서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에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엄마의 DNA를 물려받은 김보민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정대영은 "코치 중에 친구, 후배들도 많은데 다들 '배구 센스는 있다'고 평가하더라"면서 "기본기를 확실하게 다지라고 조언해주고 있는데 생각보다 빨리 늘고 있는 것 같다"고 내심 뿌듯함을 내비쳤다.
42세에도 여전한 엄마. 중학교 레벨에서 쑥쑥 성장하고 있는 딸. 일각에서는 이러다 '정대영 모녀'가 V리그에서 함께 뛰는 것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정대영은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보민이가 데뷔할 때면 내 나이가 50세를 바라보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다. 은퇴 후 지도자로 같은 팀에 있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정대영은 현역 은퇴 후 지도자의 꿈을 가지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중, 고등학교의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는 데 뜻을 두고 있다고.
정대영은 "요즘 들어 점점 공격을 강조하다보니 기본기를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다"면서 "한국 배구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결국 기본기가 잡혀있지 않으면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딸에게도 이 부분은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1인 딸은 한참 '사춘기'에 접어들 시기이기도 하다. 배구선수의 길을 택하고 단체 생활을 하면서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김보민 역시 감정 기복이 느껴질 때가 있다고 했다.
그는 "가끔 많이 힘들게 느껴질 때도 없지는 않다"면서도 "그래도 배구에 꿈이 있고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잘 해나가고 싶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대영이 20년 넘는 후배들과도 허물없이 지내는 '비결' 중 하나 역시 딸의 존재가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어떻게 보면 딸하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친구들"이라면서 "딸이나 조카처럼 생각하다보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가도 한편으론 짠한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 말했다.
오래, 그리고 멀리 달려온 정대영은 이제 선수 생활의 황혼기를 맞고 있다. 그는 "GS칼텍스와 새 계약을 했으니 45살까지는 뛸 수 있겠다는 생각"이라면서 "누구든지 '정대영' 하면 언제든 어디서든 필요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꾸준한 선수로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딸도 그런 엄마를 존경하고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그는 "아직 먼 이야기지만 나는 마흔살 넘어서까지 선수 생활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면서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을 엄마가 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김보민이 롤모델로 삼은 이는 엄마가 아닌 '배구여제' 김연경이다. 그는 "공격과 수비를 전부 잘 하고, 경기를 하는 모습이 멋있다"고 말했다.
내심 서운할 법도 하지만 엄마는 그마저도 이해했다. 정대영은 "딸이 아웃사이드 히터 포지션을 희망하고 있어서 같은 포지션의 최고 선수를 좋아하는 것"이라며 웃었다.
starburyny@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