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말 안 맞는 정몽규와 클린스만…한국 축구의 끝나지 않는 악몽

클린스만 "농담처럼 감독 제안" vs 정 회장 "벤투와 똑같은 절차"
클린스만 감독은 전력강화위원회가 있는 줄도 몰랐다고 고백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의 거취 관련 발표를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2024.2.16/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서울=뉴스1) 이재상 기자 =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은 1년 만에 떠났으나 한국 축구의 악몽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대표팀 감독에서 경질된 클린스만은 현지 언론을 통한 잇따른 폭탄 발언으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KFA) 회장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지난해 2월27일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됐던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2월16일 1년 여 만에 대한축구협회로부터 경질 통보를 받았다. 클린스만 감독은 부임 내내 이렇다 할 전술 없는 경기에 외유논란, 재택근무, 경기에 패하고도 계속 웃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64년 만에 우승을 노렸던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결과가 치명타였다.

한국은 4강까지 어찌어찌 올랐으나 준결승서 요르단을 상대로 유효슈팅 1개도 때리지 못하는 수모를 겪으며 0-2로 패했다. 요르단전을 하루 앞두고 손흥민(토트넘)과 이강인(파리생제르맹)이 물리적인 충돌을 했던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선수단 관리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꿈을 이루지 못한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이 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2024.2.8/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결국 대한축구협회는 클린스만 감독과 작별을 택했다. 가뜩이나 속이 쓰린데, 한국 축구를 향한 클린스만의 존중 없는 태도가 계속 공개돼 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는 과정을 독일 매체에 밝혔는데 이로 인한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자신이 농담으로 던진 말에 정몽규 회장이 진지하게 감독직을 제안했다는 내용이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기술연구그룹(TSG) 일원으로 카타르 월드컵에 참여했던 클린스만은 현장에서 정몽규 회장을 만나 인사한 뒤 "감독을 찾고 있냐"고 물었다. 클린스만은 독일 언론을 통해 "그때 그 말은 농담이었다"고 장난처럼 전했다.

자신의 의도와 달리 진지한 표정으로 응한 정 회장이 몇 주 뒤 직접 전화를 걸어왔고 결국 자신이 한국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그런 내용을 후일담으로 전하는 것도 비매너다. 더 큰 문제는, 투명하고도 체계적인 선임 절차를 거쳐 클린스만 감독을 데려왔다고 했던 정 회장의 말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정 회장은 16일 기자회견에서 "(클린스만) 감독 선임에 대한 오해가 있다"며 "벤투 감독 때와 같은 절차였다. 61명의 후보군이 23명으로 좁혀졌고, 이후 마이클 뮐러 위원장이 5명을 인터뷰해서 최종 2명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클린스만 감독이 최종적으로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클린스만의 설명은 달랐다. 전력강화위원회가 버젓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된 절차 없이 정 회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이 클린스만 감독의 '가벼운' 입을 통해 드러났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곧장 정 회장에게 문자메시지로 연락해 직접 대면한다는 사실도 밝혔다.

위르겐 클린스만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2024년 제1차 전력강화위원회에 화상으로 참여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4.2.13/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심지어 클린스만 전 감독은 자신을 뽑은 '전력강화위원회'라는 기구 자체를 잘 몰랐다고 이야기해 정 회장의 발언을 무안하게 했다.

클린스만은 거취를 논의했던 15일 전력강화위원회 회의에 비대면으로 참석했는데 당시 "전력강화위를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몰랐다"고 답했다.

축구계에 따르면 클린스만 감독은 "진작 전력강화위를 알았다면 내가 먼저 더 소통하고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고 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강화위원들이 충격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선임 후 각 종 논란을 일으켰던 클린스만 감독은 떠났으나 한국 축구는 잘못된 만남에 따른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특히 클린스만 감독을 데려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정몽규 회장은 입지가 더 위태로워졌다.

한편 대한축구협회는 공석이 된 전력강화위원장의 후임자를 선임, 새 사령탑 선임 작업에 속도를 낸다는 구상이다. 이미 클린스만 감독으로 인해 망신살이 뻗친 한국은 더 철저한 검증과 투명한 선임 절차가 필요해 보인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의 거취 관련 발표를 마친뒤 인사하고 있다. 2024.2.16/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 2024.2.15/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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