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무능한 지도자·축협 연출의 예견된 실패…퇴보한 한국 축구
사령탑 선임부터 삐걱…시스템은 어디로
벤투 후 1년2개월 만에 공든 탑 무너져
- 김도용 기자
(도하(카타르)=뉴스1) 김도용 기자 = 64년을 기다린 한국 축구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우승 도전이 또다시 무산됐다. 대회 전부터 많은 우려가 있었으나 '그래도 멤버가 좋으니' 기대했는데, 형편없는 내용과 결과가 나왔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7일(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아흐메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르단과의 2023 AFC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0-2로 완패했다.
일단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던 외침이 또 무산된 게 가장 아쉽다. 매 경기 졸전을 거듭하던 클린스만호는 결승 무대도 밟지 못하고 짐을 쌌으니 토 달 수 없는 실패다.
결과만큼 뼈아픈 것은 이전보다 퇴보한 내용을 보였다는 점이다.
대한축구협회는 러시아 월드컵이 끝난 2018년 8월, 체계적이고 꽤 투명한 절차를 통해 파울루 벤투 감독을 선임했다. 그리고 벤투 감독과 협회는 4년이라는 보장된 기간에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대표팀을 지도했다.
흔들림 없는 전진 덕분에 대표팀은 상대가 누구든 자신들이 준비한 능동적인 축구를 펼칠 수 있었고 그 힘을 바탕으로 사상 두 번째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뜻깊은 성과를 냈다. 무엇보다 한국 축구도 세계 무대에서 강호를 상대로 주눅 들지 않고 대등하게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하지만 지난 4년 4개월의 공든 탑이 무너지는데 단 1년 2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KFA) 회장과 클린스만 감독의 무능이 합쳐진 결과다.
시작은 정 회장의 독단이다. KFA는 지난해 2월 클린스만 감독의 선임을 발표했는데, 당시 마이클 뮐러 KFA 대표팀 전력강화위원장과 전력강화위원회는 이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정 회장 등 고위직들의 선택으로 한국 대표팀의 수장이 결정됐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한 정몽규 회장은, 지도자로서 보여준 것이 없는 사령탑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자 "클린스만 감독도 자기 명예를 걸었다. 잘할 것으로 기대 중"이라며 감쌌다. 하지만 구체적인 선임 이유를 밝히지 못할 정도로 검증은 없었다.
앞서 벤투 감독을 선임할 때 투명한 절차와 정확하고 명쾌한 설명으로 신뢰를 받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KFA는 자신들이 애써 만들어 놓은 시스템을 무시했다.
시대를 역행하는 행정으로 선임된 클린스만 감독은 시작부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잦은 휴가와 해외 출장, 미국 재택근무 등 근태에 관련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경기력과 결과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클린스만 감독을 향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래도 일단 아시안컵까진 기다려보자는 것이 대세였는데, 실망스러웠다.
클린스만호는 손흥민(토트넘),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등 유럽에서도 내로라하는 선수들로 구성됐지만 조별리그 1차전부터 요르단전까지 6경기 내내 답답한 모습을 보였다. 스쿼드의 이름값만 따져서는 한국에 비할 팀이 없었으나 팀으로는 오합지졸이었다.
장점이라고 자신했던 공격은 11골을 뽑아냈다. 하지만 필드골은 단 4개에 그쳤다. 수비는 6경기마다 실점하면서 총 10골을 허용했다. 이번 대회 출전 24개국 중 신태용 감독의 인도네시아와 함께 가장 많은 실점을 기록한 팀이다. 공격과 수비 모두 조직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가장 답답한 것은, 새로운 감독과 1년 넘게 훈련한 팀이 어떤 축구를 하려는지 좀처럼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불과 1년 2개월 전까지만 해도 상대가 누구든, 그것이 통하든 막히든, 준비한 과정을 필드에 쏟아내던 벤투호와는 사뭇 달랐다. 한 것이 없으니 평가도 어렵다.
벤투 사단과 함께 어렵사리 한 계단 올라섰다던 한국 축구는 퇴보했다. 아시안컵은 시대에 뒤처지는 협회 행정과 시대를 못 쫓아가는 지도자가 합작한 예견된 실패다.
dyk060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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