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김민재…한국 축구 10년을 짊어진 두 기둥
손흥민 시대 이후를 이끌어 갈 젊은 리더들
- 안영준 기자
(서울=뉴스1) 안영준 기자 = 요즘 해외 축구 팬들은 시쳇말로 ‘축구 볼 맛’이 난다. 이전까지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 홀로 새벽을 책임졌다면 이제는 프랑스 리그1 파리생제르맹(PSG)의 이강인,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의 김민재까지 빅클럽에서 뛰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유럽 무대를 누빈 한국 축구 선수들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강인과 김민재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전 세계 최고의 스타들만 싹싹 긁어모으는, 유럽의 수많은 클럽 중에서도 최고 중 최고로 꼽히는 팀이 둘의 가치를 인정하고 모셔 왔다.
입단해서 자리만 하나 차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별들만 모인 초호화 군단에서 매주 주전으로 나서고, 앞장서서 팀을 이끌고, 리그 사무국이 선정하는 라운드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는 등 펄펄 날고 있다.
한국 축구가 늘 동경하고 따라잡아야 할 존재로 여기는 유럽 한복판에서, 한국 선수가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연일 펼치고 있으니 당연히 보는 재미가 있다.
심지어 이강인은 2001년생, 김민재는 1996년생으로 여전히 젊거나 한창인 나이다. 두 선수가 지금처럼만 해준다면 한국 축구는 향후 10년이 든든하다.
호들갑이 아니다. 이미 둘은 유럽 축구계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레벨에 도달해 있다. 어쩌면 지금 보내는 찬사로는 다 담아내지도 못할, 대단한 시대의 시작을 직접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장을 멈추지 않은 슛돌이와 괴물
두 선수가 빅클럽에 자리를 잡고 활약하기까지 걸린 시간과 과정은 조금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은 있다. 바로 끊임없이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강인은 TV 예능을 통해 이 빠진 꼬마 슛돌이로 처음 팬들 앞에 섰다. 이후 2011년, 10살의 나이로 스페인으로 건너갔다. 유럽 생활로만 치면 올해가 13년차다. 이강인은 초반부터 번뜩이긴 했지만, 지금처럼 훌륭한 평을 받지는 못했다. 공격에서의 창의성은 좋았지만, 수비력이 받쳐주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많았던 지적이다. 그래서 이강인은 수비를 보완해 주는 전술적 장치가 마련돼야만 빛을 낼 수 있는, 반쪽자리 선수로 간주됐다. 첫 성인팀 발렌시아(스페인)에서 "이적료를 안 받을 테니 아무나 데리고 가라"며 자유계약으로 풀어준 것도 일종의 계륵 같은 존재였던 까닭이다.
하지만 이강인은 점점 단점을 극복, 새로운 선수로 재탄생했다. 마요르카에서 뛰던 2022년, 수비 범위를 넓히고 적극적인 몸싸움도 하며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제 몫을 했다. 드리블을 잘했지만 템포를 너무 잡아먹는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킬 패스와 크로스 능력을 장착하며 비난도 잠재웠다. 이강인은 장점과 단점이 분명한 선수에서, 장점을 유지하고 단점만 지운 선수가 됐다. 선수로서의 가치는 당연히 급상승했다.
김민재는 매 시즌 더 높은 무대에 도전하며 그에 어울리는 발전으로 차근차근 올라온 케이스다. 김민재는 K리그 전북 현대에서 3년을 보낸 뒤 2019년 베이징 궈안(중국)으로 옮기며 첫 해외 진출을 했다. 이어 25살이던 2021년 페네르바흐체(튀르키예)로 이적하며 ‘첫 유럽’을 경험했고, 2022년 나폴리(이탈리아)로 옮기며 '첫 빅리그'에 도전했다.
매번 다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는데, 그때마다 김민재는 높아진 수준과 기대치에 맞게 업그레이드했다. 김민재처럼 단계를 높여가며 성장해 빅클럽까지 입성한 선수는 유럽에서도 많지 않다. 유럽 스카우트들은 둘의 성장을 놓치지 않았다. 2023-24 여름 이적시장 내내 뜨거운 구애를 받은 끝에 이강인은 PSG, 김민재는 바이에른 뮌헨의 유니폼을 입었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이강인과 김민재가 얼마나 높은 수준에 올라서 있는지부터 짚어본다. PSG는 슈퍼스타를 앞세운 팀에서 조직적이고 밸런스를 갖춘 젊은 팀으로의 컬러를 재정립 중인데 그 장기 프로젝트의 핵심 퍼즐로 이강인을 영입했다. 꽤 중책을 맡았지만, 이강인은 그 역할을 잘 소화하고 있다. 이번 시즌 PSG는 소유와 연계에 능한 이강인을 중심으로 조직력을 앞세운 축구를 구사 중이다. 부상으로 잠시 팀을 떠나 있던 이강인은 리그1 4번째 경기였던 10라운드 브레스트전에서 첫 도움을 기록했고 11라운드 몽펠리에전에선 첫 골까지 터뜨렸다.
특히 11라운드에선 미드필더로 62분을 뛰고도 패스 성공률 100%를 기록,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강인은 10·11라운드 모두 리그1 베스트11에 선정됐다. 프랑스 다수의 매체는 "PSG가 보석을 데려왔다"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많은 사람이 '메날두(메시+호날두)’를 이을 다음 세대 세계 최고의 선수로 킬리안 음바페를 꼽는데 이강인은 매 주말 음바페가 골을 넣을 수 있도록 킬 패스를 보내는 선수다.
김민재도 마찬가지다. 험난한 주전 경쟁이 예고됐던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이적 직후부터 견고한 수비를 선보이며 일찍 주전을 꿰찼다. 새 리그와 새 팀에 대한 적응도 필요 없었다. 김민재는 다요 우파메카노와 마티아스 데 리흐트 등 지난 시즌 분데스리가 최고의 센터백을 단숨에 실력으로 제쳤다. 이제는 다른 두 명 중 누가 김민재의 수비 파트너가 될 것이냐가 관건이다. 2023년 11월10일 기준 전 경기에 출전 중인 김민재는 또 휴식 경쟁에서 밀렸다는 우스갯소리를 듣는다.
김민재는 터프한 분데스리가에서도 힘과 높이에서 밀리지 않았고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에서도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괴물 수비수' 김민재를 등에 업은 덕에 바이에른 뮌헨은 분데스리가 34번째, UCL 7번째 우승을 향해 순항 중이다.
◇전에 없던 유형의 스타가 나왔다
둘은 이전에 유럽에서 뛰었던 한국 선수들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스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가장 성공한 유럽파로 평가받는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퀸스파크레인저스)은 많이뛰는 선수, 손흥민(레버쿠젠·토트넘)은 빨리 뛰는 선수였다. 두 선수의 성공도 대단한 업적이다. 하지만 개인 기량과 기술로 승부하는 것은 여전히 유럽 선수들만 할 수 있는, '넘지 못할 영역'이라는 한계가 있던 게 사실이었다.
이강인은 그 틀을 깼다. 이강인은 그 기술 좋다는 스페인 선수들, 눈 감고도 기본기를 한다는 프랑스 선수들 틈에서도 돋보이는 개인 기술을 뽐내고 있다. 이강인은 173㎝의 작은 신장이지만 견고한 코어를 바탕으로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빠른 무게 중심 이동으로 상대의 수비 범위에서 벗어난다. 한국 선수가 기술만으로 유럽 최고의 선수들을 압도하는 모습. 앞서 말했던 축구 팬들이 '축구 볼 맛'이 나는 이유다.
김민재는 한국 센터백으로는 유일하게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그동안 한국인 해외파는 대부분 미드필더와 공격수였다. 신장과 힘이 중요한 수비 포지션 특성상 아시아인이 해외에서 성공하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명보처럼 영리한 머리로 빠른 판단을 하거나 이영표처럼 오버래핑과 크로스 등 다른 무기로 승부한 케이스가 많았다.
하지만 김민재는 ‘정면 승부’로 통했다. 김민재는 힘의 상징인 로멜로 루카쿠와의 공중볼 경쟁서 100% 승리하는 등 자신의 피지컬을 증명하고 있다. 스피드가 느린 것도 아니다. 힘을 앞세워 덤비는 수비를 하면서도 배후 공간으로 뛰는 선수도 놓치지 않는다. 공중 경합, 지상 경합, 태클, 가로채기 등의 수치에서 매 경기 유럽 최상위다. 김민재는 자타공인 '잘 막는' 수비수로 통하고 있다.
◇'이강인·김민재' 보유국 대한민국, 향후 10년이 든든
둘의 성공은 한국 국가대표팀을 든든하게 만드는 자산이기도 하다. 한국 축구는 2010년대까지 박지성의 시대를 보냈고 현재는 손흥민의 시대를 누리고 있다. 국가대표팀 역대 최장 주장인 손흥민은 현 대표팀 리더이자 전력의 핵심이다. 하지만 1992년생 손흥민이 언제까지나 대표팀에 남아 있을 수는 없다. 이제는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하는데, 2001년생 이강인과 1996년생 김민재가 새 시대를 열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이미 둘의 대표팀 내 입지는 견고하다. 이강인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전폭적 지지 아래 팀 전술의 핵심으로 올라온 지 오래다. 스타성 역시 현 최고인 손흥민에 못지않아,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이제는 손흥민보다 이강인의 유니폼 마킹이 더 많이 팔린다"고 귀띔할 정도다. 리더십이 뛰어난 김민재는 손흥민이 자리를 비울 때 주장 완장을 차는 등 이미 '차기 주장'이다.
각각 중앙 수비와 중앙 미드필더를 담당하는 두 선수가 중심을 잘 잡아준다면 한국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도전도 두려울 게 없다. 바이에른 뮌헨 수비수가 뒤를 지키고 PSG 미드필더가 중원을 책임지는 대표팀은 유럽에서도 그리 많지 않다.
향후 10년 동안 한국 축구를 든든하게 책임질, '이강인과 김민재의 시대'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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