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호 결산] 달라진 아시아 축구…색깔을 갖추자 경쟁력이 생겼다
카타르 제외한 아시아 팀 조별리그 7승1무7패
'빌드업' 벤투호, '카운터' 일본 등 인상적 활약
- 안영준 기자
(도하(카타르)=뉴스1) 안영준 기자 =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은 한국을 포함해 일본,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아시아 팀들의 선전이 빛난 대회다. 그저 '들러리' 수준에 가깝던 과거의 대회와는 확실히 다른 경쟁력을 보여줬다.
16강에 무려 3개 팀(한국, 일본, 호주)이 진출했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르헨티나를, 일본이 독일과 스페인을, 한국이 포르투갈을, 이란이 웨일스를 꺾는 등 유럽과 남미의 강호를 상대로 짜릿한 승리도 여러 차례 연출했다.
개최국 카타르가 홈 이점을 살리지도 못하고 3전 3패로 부진하긴 했지만 이를 제외한 5개 아시아 팀의 조별리그 성적은 7승1무7패로 분명한 성과를 냈다.
단순히 결과만 좋았던 것도 아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특징은 아시아 팀들이 각각 자신들만의 색을 가졌다는 데 있다.
물론 이전에도 아시아 팀들의 월드컵 승리는 심심치 않게 있었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객관적 열세를 인정하고 수비에만 집중하다 어떻게든 결과만 얻어낸 경우가 다수였다. '수동적 승자'였다.
이번엔 달랐다. 무조건 꼬리를 내리지 않았다. 아시아 팀들은 각자 팀 상황 안에서 자신들만의 색을 찾았고 이를 실전에서 적극 활용해 승리를 얻었다.
지난 대회가 끝난 이후부터 4년의 시간을 담아 준비한 한국은 '빌드업 축구'가 완전히 자리를 잡은 팀이었다.
우루과이·포르투갈 등 2선이 강하다는 팀들을 상대로도 중원을 장악한 뒤 차근차근 점유율을 높이는 축구를 마음껏 구현, 그라운드 안에서 무엇을 하려는지 분명하게 보여줬다.
세운 뱡향이 명확하고 그 길을 따라 흔들림 없이 나아갔으니 어떤 팀을 만나도 힘을 잃지 않았고 이는 선수들의 자신감과 좋은 경기력으로까지 이어졌다.
덕분에 한국 팬들은 포르투갈전 짜릿한 승리를 포함해 매 경기 '우리의 축구'를 확인하고 감상할 수 있었다. '능동적 승자'였다.
벤투호 황태자 황인범 역시 "브라질에 패한 건 아쉽지만, 이번 대회에서 우리가 하려는 축구를 하고 '쫄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되돌아봤다.
'옆 나라' 일본도 마찬가지다. '죽음의 조'에 속했던 일본은 독일과 스페인을 모두 잡는 파란을 일으키며 1위로 토너먼트에 올랐다. 16강전에서도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좋은 경기를 했지만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패했다.
일본은 수비에 집중하는 축구를 펼쳤지만 그렇다고 '수동적'인 형태는 아니었다.
일단 후방에 선수를 많이 배치하며 전략적으로 상대의 힘을 뺀 뒤 후반전에 빠르고 역동적인 카운터를 준비, 효과적인 결실을 얻었다. 이를 위해 포백과 파이브백을 유동적으로 바꾸는 훈련에 특히 공을 들였고 덕분에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경기를 이끌 수 있었다.
일본 매체 '골라조'의 유키 니시카와 기자는 "일본은 이 축구를 하기 위해 이전부터 포백과 파이브백을 언제든 변환할 수 있도록 연습했다"고 귀띔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그랬다. 사우디는 1승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1차전에서 '메시국' 아르헨티나를 잡은 것만으로도 큰 관심을 받았다.
사우디는 이 경기서 지치지 않는 강한 전방 압박과 2선에서 공을 빼앗은 뒤 1~2번의 터치만으로 일대일 찬스를 만드는 완성도 높은 패턴으로 세계 축구 팬들을 놀라게 했다.
일본 프리랜서 아사다 마사키 기자는 "그는 "과거 아시아 팀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전력에서 밀린다고 생각하며 아예 수비만 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리고는 역습으로 승부를 보는, 비슷하고 단순한 패턴이었다"면서 "하지만 이번 대회는 달랐다. 각 팀마다 자신들만의 무기들을 준비해 경기했다"고 했다.
요컨대 아시아가 아시아만의 색을 마음껏 발휘했고 이를 앞세워 결과까지 충분하게 증명해냈다. 다만 이것으로 만족하기엔 이르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팀들이 최대 16강에서 여정을 마무리, 아쉬움과 한계도 동시에 남겼다.
이제는 4년 뒤 열릴 2026 월드컵을 향한 준비를 시작해야 할 때다.
계약이 만료된 벤투 감독과 결별, 새로운 사령탑과 체제로 다시 뛸 준비를 하는 한국은 벤투호가 카타르에서 보인 임팩트와 성과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벤투호를 통해 한국은 확실한 색깔이 가졌고, 그 색깔로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다는 것까지 확인했다.
그 확인은 다음 대회를 준비하는 길잡이가 될 수 있다. 누가 지휘봉을 넘겨받을지는 모르겠으나, 긴 호흡으로 확고한 철학을 지니는 과정을 간과하지 않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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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벤투호의 카타르 월드컵 여정이 8강 앞에서 멈췄다. 비록 최강 브라질을 넘지는 못했으나 대회 내내 강호들과 당당히 맞서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로 12년 만에 16강에 진출하는 등 내용과 결과 모두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주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내일의 희망을 선사했다는 점에서 박수가 아깝지 않다. 2002년 4강 신화로부터 20년이 지난 2022년. 모처럼 행복하게 즐긴 한국축구의 월드컵 도전기를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