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11m 러시안 룰렛' 잔인한 승부차기…강호들 운명 갈라

브라질·코스타리카, 승부차기 끝에 8강 진출
0.5초만에 판가름…키커와 골키퍼의 살얼음판 대결
역대 WC서 25번, 한국·독일 웃고 이탈리아·잉글랜드 눈물

(서울=뉴스1) 주성호 인턴기자 = 브라질의 훌리오 세자르 골키퍼가 29일(한국시간) 칠레와의 2014 브라질 월드컵 16강 승부차기에서 알렉시스 산체스의 슛을 막아내고 있다. 브라질은 승부차기 접전 끝에 칠레를 꺾고 8강에 올라갔다. © AFPBBNews=News1

</figure>2014 브라질 월드컵 돌풍의 주인공 북중미의 코스타리카가 16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그리스를 꺾고 사상 첫 8강에 진출했다. 16강전 8경기 중 절반이 치러진 가운데, 2경기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이 펼쳐졌다.

코스타리카는 30일(이하 한국시간) 브라질 헤시피의 아레나 페르남부쿠에서 벌어진 그리스와의 2014 브라질 월드컵 16강전에서 전, 후반 연장까지 1-1 무승부를 기록한 후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승리했다.

조별예선에서도 신들린 듯한 선방을 보여줬던 코스타리카의 케일러 나바스 골키퍼는 이날도 전후반 내내 슈퍼 세이브를 기록했고, 승부차기에서도 그리스 공격수 게카스의 슈팅을 막아내며 팀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앞서 29일 열렸던 16강 첫 경기에서도 승부차기 명승부가 연출됐다. 브라질과 칠레의 16강 경기에서 양 팀은 전후반과 연장전 포함 120분을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브라질의 훌리오 세자르 골키퍼와 칠레의 클라우디오 브라보 골키퍼는 잇따라 선방쇼를 펼쳤다. 세자르가 칠레 키커 피니야와 산체스의 슈팅을 차례로 막자 브라보도 헐크의 슛을 막아내며 일진일퇴했다.

결국 마지막 키커에서 승부가 갈렸다. 브라질의 마지막 키커 네이마르가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킨 반면 칠레의 5번째 키커로 나섰던 자라의 슛이 골포스트를 맞고 나오며 브라질의 승리로 끝났다.

승부차기는 11m 거리를 두고 골키퍼와 키커가 살얼음판 맞대결을 펼치기 때문에 흔히 '11m 러시안 룰렛'으로 불린다.

승부차기는 객관적으로 키커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키커가 찬 공이 골망을 흔드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0.5초. 하지만 골키퍼가 키커가 차는 공을 보고 방향을 결정해 몸을 날리는 데는 약 0.6초가 걸린다. 따라서 골키퍼는 키커가 공을 차기 전에 미리 정한 방향으로 손을 뻗을 수밖에 없다.<figure class="image mb-30 m-auto text-center border-radius-10">

코스타리카의 케일러 나바스 골키퍼가 30일(한국시간) 그리스와의 2014 브라질 월드컵 16강전에서 그리스 다섯 번째 키커 게카스의 슈팅을 막아내고 있다. © AFPBBNews=News1

</figure>하지만 승부차기에서는 심적 부담을 안은 키커의 실수와 골대 불운 등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결과가 속출하기도 한다.

역대 월드컵에서는 이번 16강전 2번을 포함해 총 25번의 승부차기 대결이 이뤄졌다. 승부차기는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첫 도입된 이후 지금껏 수많은 명승부를 연출했다. 32년간의 승부차기 역사에서 항상 승리한 팀이 있었던 반면 지긋지긋한 징크스에 시달리는 팀들도 있었다.

한국 대표팀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승부차기 끝에 '4강 신화'를 달성해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

당시 한국은 스페인과의 승부차기 대결에서 스페인 공격수 호아킨의 슈팅을 막아낸 골키퍼 이운재의 선방과 홍명보 현 대표팀 감독의 다섯 번째 킥 성공으로 4강에 진출했다.

아울러 '전차군단' 독일도 월드컵 승부차기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역대 월드컵에서 4번의 승부차기를 겪은 독일은 4번 모두 승리했으며 18번의 키커 중 단 한 명만이 실축했다.

한국과 독일이 월드컵 승부차기에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반면 '승부차기 악몽'에 시달리는 팀들도 있다. 이탈리아와 잉글랜드가 대표적인 경우다.

특히 이탈리아는 1994 미국 월드컵에서 브라질과의 결승에서 승부차기 맞대결을 펼친 바 있다. 당시 본선 무대에서 5골을 터트리며 이탈리아의 결승행을 이끌었던 '판타지스타' 로베르토 바지오는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실축해 많은 팬들의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승부차기 끝에 프랑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해 트라우마를 극복해냈다.

아울러 잉글랜드 역시 승부차기에 유독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2012 런던 올림픽 당시 단일팀을 꾸려 나왔던 영국과 한국 대표팀의 8강전이었다. 당시 한국은 골키퍼 이범영이 잉글랜드 간판공격수 다니엘 스터리지의 마지막 슛을 막아 승부차기 5-4 승리로 4강에 진출했다.

잉글랜드는 메이저 축구대회에서 겪었던 7번의 승부차기에서 1승 6패라는 절대적인 열세를 기록 중이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준결승, 유로 1996 준결승, 1998 프랑스 월드컵 16강전, 유로 2004 8강전, 2006 독일 월드컵 8강전, 유로 2012 8강전에서 모두 승부차기로 패했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 본선무대를 앞두고도 잉글랜드의 로이 호지슨 감독은 선수들에게 승부차기 특훈을 시켰지만 1무 2패라는 저조한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해 승부차기를 할 기회조차 없었다.

한편 역대 월드컵에서 나온 25번의 승부차기 중 먼저 차는 팀이 승리한 경우가 16번이나 됐다. 2002년 한국과 스페인의 대결에서도 한국이 선축해 승리를 거뒀고,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먼저 공을 찼던 브라질과 코스타리카가 모두 승리했다.

sho21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