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손 들어준 문체부 "선수가 원하는 용품 쓰고 '복종강요' 폐지해야"

배드민턴협 조사 결과 발표…개인스폰서 노출도
"김택균 회장, 배임·횡령 책임 피하기 어려울 것"

이정우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이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대한배드민턴협회 조사 관련 중간 발표하고 있다. 2024.9.10/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서울=뉴스1) 문대현 기자 =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수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대한배드민턴협회의 의무 규정을 즉각 폐지하도록 권고한다. 선수 개인이 원하는 용품도 사용이 가능하도록 후원사와도 협의할 계획이다.

이정우 문체부 체육국장은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진행된 배드민턴협회 조사 중간 결과 발표에서 이같이 밝혔다.

문체부는 지난달 초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안세영(22·삼성생명)의 작심 발언 이후 △제도개선 △국가대표 관리 △보조사업 수행 상황 점검 △협회 운영 실태 등에 대해 조사 중이다. 이를 위해 안세영을 비롯해 총 22명의 국가대표 선수의 의견을 청취했다.

조사 결과 배드민턴협회의 '국가대표 운영 지침'이 문제가 됐다. 협회는 현재 국가대표 선수에게 선수촌 내외 생활과 훈련 중 '지도자의 지시와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임무를 부과하고 있다. 사실상 지도자와 선수를 갑과 을로 정의하는 셈이다.

이 국장은 이에 대해 "故 최숙현 선수 사건 후 체육계에서 '복종 강요'가 공식 폐지됐음에도 잔존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이에 즉각 폐지를 권고한다. 만약 문체부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을 시 교부금 배부의 불이익을 주는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안세영이 제기한 협회 후원 용품의 사용 범위에 대해서도 문체부는 선수의 결정권을 존중하기로 했다.

이정우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이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대한배드민턴협회 조사 관련 중간 발표를 하고 있다. 2024.9.10/뉴스1 ⓒ News1 허경 기자

현재 협회는 유니폼뿐만 아니라 경기력과 직결되는 라켓, 신발까지 후원사(요넥스)의 용품을 사용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44개의 종목 중 경기력에 직결되는 용품을 선수들에게 강제하는 경우는 복싱과 배드민턴뿐이다.

이 국장은 "해외 사례를 봐도 경기력에 직결되는 용품 사용을 강제하지 않는다. 특히 선수단 모두가 라켓, 신발은 본인이 원하는 용품을 사용하길 희망하고 있다"며 "선수의 결정권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개선을 위해 협회 후원사와 협의하겠다"고 설명했다.

유니폼 로고 노출과 관련해서도 대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세계배드민턴연맹 규정에 따르면 선수의 유니폼에 최대 5개의 후원사 로고를 노출할 수 있는데, 현재 협회는 선수 개인의 후원사 로고 노출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문체부는 국내외 사례를 파악하고, 전문가 자문을 통해 대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또 '국가대표가 아닌 선수'는 국가대표 활동기간 5년을 충족하고 일정 연령(남 28세, 여 27세) 이상인 경우에만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규정도 선수들의 의사에 따라 폐지를 추진하기로 했다.

조사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진 김택규 협회장의 후원 물품 배임 및 유용 의혹에 대해선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문체부에 따르면 협회는 2023과 2024년 각각 8억 원가량의 후원사 셔틀콕을 구입하면서 1억 5000만 원 상당의 셔틀콕을 후원 물품으로 추가로 받았다.

그러나 이를 명확한 기준 없이 시도별 협회로 배분한 것이 문제가 됐다. 일례로 협회의 공모사업추진위원장이 소속돼 있는 태안군 협회로는 약 4000만 원 상당의 용품이 배분됐지만 경남도 협회에는 단 3개의 셔틀콕만이 돌아갔다.

이정우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이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대한배드민턴협회 조사 관련 중간 발표를 하기 앞서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2024.9.10/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이 국장은 "기존 용품 구매 외에 추가로 후원 물품을 더 받은 것 자체는 잘한 일로도 볼 수 있으나 그 물품을 정부 승인 없이 임의로 사용한 것은 문제가 된다"며 "협회에서 소명하더라도 위법성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김택규 회장의 횡령·배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또 "조사의 본질은 선수와 지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세영 등 선수들이 10월 전국체전에 마음 편히 뛸 수 있도록 늦어도 9월 말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며 "중간발표 내용에서 약간 달라지는 부분은 있을 수 있지만 전체적인 틀은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공지했다.

그러면서 "성적이 좋은 선수는 제약 없이 수익을 갖고 갈 수 있도록 하고, 그러면서도 후보 선수나 꿈나무 선수에 대한 지원도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eggod611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