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이자 어쩌면 마지막일…여자복싱 임애지의 간절한 도전 [파리에서]
여자 54㎏급 銅 확보…4일 밤 11시 34분 준결승
기약없는 다음 올림픽…복싱 2028 정식 종목 보류
- 이상철 기자
(파리=뉴스1) 이상철 기자 = "꼭 메달을 따고 싶었다."
상대 선수의 얼굴과 몸통에 소나기 펀치를 날리는,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복서 임애지(25·화순군청)도 링 아래로 내려가면 평범한 이웃여성이었다.
임애지는 2일(한국시간) 2024 파리 올림픽 복싱 여자 54㎏급 8강전 승리로 한국 최초의 여자 복싱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자 그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자원봉사자가 건넨 오륜기 선글라스를 냉큼 끼더니, 취재진 앞에서는 요청받지도 않았는데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혔다. 다 담기 어려울 정도로 흥이 넘쳤다.
말 한마디 한마디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독특한 매력에 터져 나왔다. "(현지시간으로 오후 9시가 넘어 시작했는데) 이렇게 밤늦게 경기한 적이 없어 기다리는 게 너무 지루했다" "상대가 너무 무서웠다" 등 엉뚱하면서 예상 밖의 답이 쏟아졌고, 그런 말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임애지에겐 사람을 즐겁게 하는 '힘'이 있다.
그렇게밝고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지만, 링 위로 오를 때 임애지는 항상 결연한 각오로 글러브를 꼈다. 전인미답의 길을 가기까지 시행착오도 많았고, 한 번을 이기기 위해 그 이상의 패배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가 수없이 찾아온 시련을 견디고 이겨내기까지 오뚝이가 돼야 했다.
2021년 도쿄 올림픽과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모두 첫판에 탈락했다. 너무 힘들게 운동하는 데 지기만 하는 복싱이 싫어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럼에도 임애지는 링을 떠날 수 없었다. "너무 못하고 졌기 때문에 글러브를 내려놓고 싶었지만 내게는 링이 곧 직장이었다. (직장에서 해고되지 않고) 어떻게 버텨야 한다고 생각으로 다시 운동했다." 웃으며 말했지만 그 발언에는 비장함이 담겨 있었다.
지금도 임애지는 벼랑 끝에 서 있다. 그가 패하는 순간, 한국 복싱의 올림픽 역사도 끝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싱 대표팀은 파리 대회에 여자 54㎏급 임애지와 60㎏급 오연지(울산광역시체육회) 등 두 명의 여성 복서만 출전했다. 오연지는 32강 탈락했고, 생존한 선수는 임애지 뿐이다.
다른 종목은 4년 후를 기약하면 되지만, 복싱은 '다음 올림픽'이 보장되지 않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서 복싱을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지 않고 보류했다. 만약 정식종목에서 빠진다면, 언제 다시 올림픽 무대로 돌아올지는 기약이 없다.
이런 상황이 된다면 임애지는 한동안 올림픽 경기를 뛴 마지막 한국 복서로 남을 수 있다. 가뜩이나 침체에 빠진 한국 복싱이다. 가까스로 피어낸 불씨를 살리기 위해, 임애지는 간절한 마음을 주먹에 담아 힘껏 날리고 있다.
동메달 결정전을 따로 진행하지 않는 복싱 종목 특성상 4강까지 진출한 임애지는 동메달을 확보했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기왕이면 시상대 꼭대기까지 올라가 금메달을 걸고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 소망이 크다.
임애지가 다시 링에 오를 차례가 왔다. 그는 4일 오후 11시 34분 '2022년 세계선수권 챔피언' 해티스 아크바스(튀르키예)를 상대로 4강전을 치른다. 이 경기에서 이겨야 진짜 '마지막 무대'를 밟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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