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배 역사 쓴 신진서 "평생 잊을 수 없어…내 바둑에 더 자신감 생겼다"
[인터뷰①] 6연승으로 대역전 드라마, 한국 4연패 견인
- 김도용 기자
(서울=뉴스1) 김도용 기자 = 지난 2월 한국 바둑은 환호했다. '바둑 삼국지'라 불리는 농심신라면배에서 '한국 바둑의 간판' 신진서 9단이 홀로 6연승을 기록하며 타이틀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특히 누구보다 자존심 강한 중국의 대표 기사 5명이 모두 신진서 9단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자국 기사들이 쓰러지고 있음에도,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인 신 9단에 중국 팬들도 환호하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농심배에서 모든 에너지를 다 쏟은 탓일까. 신진서 9단은 농심배 이후 몸살감기를 겪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다.
최근 바쁜 일정을 하나둘 마무리하며 여유가 생긴 신진서 9단은 4일 서울 성동구의 한국기원에서 뉴스1과 만나 "그동안 개인 일정과 대국, 연구 등으로 바쁘게 보냈다. 일정이 쉽지 않지만 많은 관심을 보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라고 입을 열었다.
신진서 9단은 지난달 바둑계를 넘어 한국 사회에 전반적인 이슈를 몰고 다녔다.
신 9단은 한국과 중국, 일본을 대표하는 기사 5명이 출전해 연승전 방식으로 펼쳐지는 국가대항전인 농심배에 한국 최종 주자로 나섰다. 신진서 9단에 앞서 4명의 동료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신진서 9단이 4연속 한국의 우승을 이끌기 위해서는 6연승이 필요했다. 비현실적인 과제였는데 이를 해냈다.
신 9단은 지난해 12월 셰얼하오 9단을 시작으로 이야마 유타 9단(일본), 자오천위 9단, 커제 9단, 딩하오 9단에 이어 구쯔하오 9단(이상 중국)까지 연속으로 제압, 끝내기 6연승에 성공했다.
더불어 농심배 통산 16연승을 기록, 대선배 이창호 9단이 갖고 있던 통산 연승(14승) 기록도 경신했다. 바둑인들은 물론 평소 바둑과 거리가 있던 일반인들도 크게 환호했다.
짜릿한 우승에 신진서 9단은 "사실 생각지 못한 결과다. 한 판만 이기자는 생각이었는데, 1승 1승이 쌓이면서 우승까지 달성했다"면서 "다시 누리기 힘든 영광스러운 경험이다. 뿌듯하고 앞으로도 기억에 남을 대회다. 통산 연승 기록의 앞자리 수도 바꿔보겠다"며 열흘 전 우승한 대회를 돌아봤다.
이어 "그동안 한국이 농심배에서 최하위에 그친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그것만 막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이야마 유타 9단에 승리해) 꼴찌로 떨어지는 것을 막으면서 심적 부담이 사라져 더 잘할 수 있었다"면서 "구쯔하오 9단과의 최종전이 워낙 중대한 경기인 만큼 압박이 강했지만 바둑 외적인 부분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바둑판만 바라봤다"고 덧붙였다.
신 9단의 말처럼 구쯔하오 9단과의 최종국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승부였다. 신진서 9단이 대국 중반까지 자신의 흐름을 잡으면서 앞서나갔지만 순간적인 실수를 범하면서 역전을 허용했다.
지난해 6월 란커배 결승전에서 구쯔하오 9단에게 1승2패로 역전패를 당했던 아픈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신 9단은 평정심을 되찾았고 오히려 구쯔하오 9단의 실수를 놓치지 않으면서 승리를 획득, 역사적인 우승을 달성했다.
신진서 9단은 "구쯔하오 9단과의 최종전이 가장 힘들었고, 고비였다. 구쯔하오 9단은 란커배 결승 때도 느꼈는데, 부동심이 있는 기사다.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도 최선의 수를 잘 찾는 능력이 있어 큰 승부에 강하다"고 상대를 높게 평가했다.
이어 "결승전에서 실수는 했지만 이후 심적인 동요는 없었다. 평정심을 끝까지 유지하려고 했고, 상대의 실수로 이길 수 있었다"고 결승전을 회상했다.
농심배 6연승은 신진서 9단의 남은 바둑 인생에 큰 힘이 될 전망이다.
신진서 9단은 "지난 2021년 온라인으로 진행된 대회에서 5연승을 기록하면서 자신감을 얻고, 세계 무대에서 내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며 "이번 6연승을 통해 애초에 목표로 뒀던 세계 대회 12회 우승, 그 이상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신진서 9단은 지금까지 총 6개의 세계 메이저대회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끝으로 신 9단은 "중국에는 현재 강자들이 많다. 이들을 꺾고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더 빼어난 실력을 보유해야 한다. 아직 내 실력에 의심이 있었는데, 이번 농심배를 통해 할 수 있다는 힘을 얻었다. 이번 대회 우승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다시 한번 농심배 우승의 의미를 더했다.
dyk060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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