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배 우승, 모두 환호할 때 웃지 못한 신진서…"할머니 생각, 만감 교차"

대회 출국 당일 조모상…우승 직후 소식 접해
"개인적인 감정에 무너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농심신라면배 바둑 세계최강전에서 한국의 4회 연속 우승을 이끈 신진서 9단과 홍민표 국가대표팀 감독이 24일 오후 인청공항으로 귀국해 축하를 받고 있다. 2024.2.24/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인천공항=뉴스1) 문대현 기자 = 신진서 9단의 활약으로 한국 바둑이 중국을 꺾고 농심배에서 우승하던 순간, TV와 모니터 앞에서 응원하던 국민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정작 누구보다 기뻐야 할 신 9단은 웃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따르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신진서는 지난 23일 중국 상하이의 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제25회 농심신라면배' 세계최강전 본선 최종전에서 한국의 마지막 주자로 나서 기적 같은 끝내기 6연승으로 대회 4연패를 만들어냈다.

신진서가 한 판만 지면 한국이 탈락하는 상황이었으나 침착하게 일본 기사 1명과 중국 기사 5명을 차례로 돌려세우며 극적인 역전 우승에 성공했다.

앞선 대회까지 농심배에서만 10연승을 올렸던 신 9단은 이번에 6연승을 추가, 대회 통산 최다 연승 기록 부문에서도 이창호 9단(14연승)을 뛰어넘었다. 끝내기 최다 연승 부문에서도 이 9단과 자신이 갖고 있던 5연승 기록을 넘어 6연승 기록을 새로 썼다.

화려한 금자탑을 세웠으나 신진서 9단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원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성향임을 감안하더라도 기쁨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신 9단의 표정은 24일 귀국 현장에서도 변함없었다. 취재진과 한국기원 관계자들이 신 9단의 '금의환향'을 반겼으나 미소만 머금을 뿐이었다. 신 9단이 활짝 웃지 못한 이유는 귀국 후 알려졌다.

한국기원의 설명에 따르면 신 9단의 할머니는 지난 18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이날은 신 9단이 농심배 출전을 위해 중국으로 떠난 날이다.

귀국 인터뷰에서 그는 "만감이 교차한다. 좋은 결과를 내 기쁘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일(조모상)로 슬프기도 하다. 분명 인생에서 가장 뿌듯한 대회였지만 그 기쁨을 마냥 즐길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농심신라면배 바둑 세계최강전에서 한국의 4회 연속 우승을 이끈 신진서 9단과 홍민표 국가대표팀 감독이 24일 오후 인천공항으로 귀국하고 있다. 2024.2.24/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신 9단은 중국 구쯔하오 9단과 마지막 대국에서 신중한 경기 운영으로 앞서 갔다. 그러나 후반 상대에게 주도권을 내주며 끌려갔다. 어쩌면 공든 탑이 무너질 뻔한 순간이었다.

신 9단은 당시를 떠올리며 "구쯔하오 9단이 워낙 침착하고 잘하는 기사라 내가 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인적인 감정으로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시 다잡았다"고 말했다.

할머니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대국 중 집중력이 살짝 흐트러졌음을 시사하는 발언이었다. 다행히 신 9단은 평정심을 되찾았고 상대의 실수를 틈타 끝내 승리를 따냈다.

신 9단은 할머니의 힘으로 기적을 만들었다고 믿고 있다. 흔들렸던 멘털을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의 기운 덕분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신 9단은 "어릴 때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뵀을 만큼 가까웠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국 일정으로 자주 못 뵀는데, 이번에 할머니가 나와 같이 싸워주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진서 9단이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들어보이는 모습. (한국기원 제공) 2024.2.23/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eggod611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