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대첩' 신진서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아직 전성기 오지 않았다"[일답]
농심배 극적 6연승으로 한국 4연패 이끌고 24일 귀국
"국내 바둑 관심, 지원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 문대현 기자
(인천공항=뉴스1) 문대현 기자 = 농심신라면배 바둑 세계최강전 본선 최종전에서 기적 같은 '끝내기 6연승'을 달성하면서 한국의 4회 연속 우승을 이끈 신진서(24) 9단이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울먹였다.
신진서 9단은 24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직후 취재진과 만나 "만감이 교차한다. 극적인 우승에 기쁘기도 하지만 대회 직전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마냥 기쁨을 즐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진서 9단은 23일 끝난 농심배에서 엄청난 업적을 이뤘다. 본선 최종전에서 한국 대표팀의 마지막 주자로 나선 그는 6차례 대국을 연속해서 따내며 한국의 대회 4연패를 만들어냈다.
나아가 신 9단은 1999년 창설한 농심배에서 특정 국가의 기사 5명을 모두 꺾은 최초의 기사가 됐다.
또한 앞선 대회까지 10연승을 올렸던 신진서 9단은 이번에 6연승을 추가, 대회 통산 최다 연승에서도 이창호 9단(14연승)을 뛰어넘었다.
신 9단은 이제 명실상부 한국 최고의 바둑 기사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환희의 순간에도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껏 웃을 수 없었다.
신 9단은 "보름 전 할머니를 찾아뵀을 때 몸이 많이 안 좋으셔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어 "이번 대회에서 할머니가 나와 같이 싸워주셨다고 생각한다"며 겨우 감정을 추슬렀다.
우승 직후 현지 중국 팬들로부터 사인과 사진 요청을 받기도 했던 신 9단은 "살면서 처음 느낀 경험이었다. 중국 내 바둑 인기가 대단하더라. 한국 기사들도 프로 의식을 갖고 바둑의 판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신 9단과 일문일답이다.
-현재 소감은.
▶만감이 교차한다. 물론 기쁘지만, 개인적인 일(조모상)로 슬프기도 하다.
-할머니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어릴 때는 자주 찾아뵀었는데 최근에는 할머니가 계신 부산에 한 번 내려가기도 쉽지 않았다. 보름 전에 할머니를 만났었는데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이셔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위독하다는 소식 후 별세하셔서 마음이 무거웠다. 할머니가 이번에 나와 함께 싸워주셨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회에서 엄청난 업적을 이룬 것만은 분명한데.
▶내 바둑 인생에서 한동안 이루기 힘든 일을 이뤘다. 현재까지 바둑 인생에서 가장 뿌듯한 일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판 중반 이후 위기도 있었다.
▶상대였던 구쯔하오 9단(중국)이 워낙 침착하고 강점이 많은 기사라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감정으로 대국을 내줘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집중하려 했다.
-이창호 9단을 뛰어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창호 9단은 여전히 나의 우상이다. 다른 레전드 선배님들과도 내가 비교되긴 아직 어렵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한참 시간이 지난 뒤 다시 평가돼야 할 것 같다. 선배님들을 앞지른다는 생각보다 나 스스로 성장에 대해 집중할 것이다.
-우승 직후 중국 팬들에게 사인 요청을 받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중국과 온라인 대국을 할 때는 큰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가 보니 정말 바둑이 인기가 많더라. 처음 느껴 보는 바둑에 대한 열기에 부러웠다. 그리고 감사했다. 중국 기사들이 바둑 발전을 위해 큰 노력을 하고 있던데 한국 기사들도 프로 의식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 국가대표팀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음에도 굉장히 힘들게 운영되고 있다. 최근에는 오히려 예산이 줄었다고 한다. 바둑 활성화를 위해 나부터 노력해야 한다.
-지금 시점이 스스로 전성기라 생각하는지.
▶20세에 첫 우승을 했는데 이후 지금까지 오랜 시간이 흐른 것은 아니라 지금을 전성기라 볼 순 없을 것 같다. 앞으로 5년~10년은 꾸준히 해야 전성기라 할 수 있다. 한국 바둑에 대한 책임감은 갖고 가되 부담 대신 즐겁게 임하겠다. 또 인간적으로도 보다 성숙한 기사가 되겠다.
-향후 계획은.
▶작년부터 중요한 대국들이 많아서 제대로 쉰 적이 없어 한동안 재충전을 하고 싶다. 올해 출발이 좋아 마음이 편하다. 지금보다 목표를 더 높게 잡고 국내, 세계 대회에서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
eggod611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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