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초짜라고 걱정했나…유연하고 단단했던 사령탑 이범호 [KIA 우승]
스프링캠프 도중 지휘봉 잡고도 통합 우승 이끌어
친근하면서도 강단 리더십…끈끈한 조직력 주도
- 권혁준 기자
(광주=뉴스1) 권혁준 기자 = KBO리그 사상 최초의 '80년대생 사령탑'인 이범호(43) KIA 타이거즈 감독이 첫 시즌부터 일을 냈다. 쉽지 않은 시작이었지만, 정규시즌에 이어 한국시리즈까지 '통합 우승'을 일구며 활짝 웃었다.
KIA는 28일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7전 4선승제) 5차전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7-5로 승리, 시리즈 전적 4승1패로 우승을 확정했다.
올해 처음 지휘봉을 잡은 이범호 감독은 데뷔 첫 시즌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대업을 일궜다.
사실 2024년 새해를 맞이할 때만 해도 이범호 감독은 '코치' 신분이었다. 1군 메인 타격코치로 야수들의 시즌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돌발 변수'가 생겼다. 김종국 감독이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며 자리에서 물러난 것.
우승 후보로 꼽히는 팀 전력 등을 고려할 때 1군 감독 경험이 있는 외부 인사도 유력하게 거론됐지만, 최종 선택은 '내부 승격'이었다.
그중에서도 비교적 젊은 나이의 이범호 감독을 발탁한 건 다소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이 감독 부임 이전 KBO리그의 최연소 감독은 두산 베어스 이승엽 감독과 삼성 라이온즈 박진만 감독이었는데, 둘 다 1976년생이다. 1980년대에 태어나 2000년대에 프로에 데뷔한 최초의 사령탑을 알린 순간이었다.
KIA는 시즌 개막 전 LG 트윈스, KT 위즈와 함께 '3강'으로 꼽혔다. 하지만 초보 감독이 갑작스럽게 지휘봉을 잡게 된 상황은 적잖은 우려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감독은 빠르게 팀을 수습했다. 선수로 9년, 코치로 3년간 KIA에 몸을 담았기에 누구보다 선수단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지휘봉을 잡은 이 감독은 '격의 없는 소통'을 자신의 장점으로 꼽으며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게 하겠다"고 했고, 개막 이후에도 실제 자신의 말을 지켜냈다.
입단 후 2년간 부상 등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던 김도영에게 '장타 재능'을 일깨운 것이 대표적이다. 김도영은 이전 2년과 다르게 과감하게 큰 스윙을 가져가며 장타를 만들어냈고, 최연소 30(홈런)-30 달성과 함께 40-40에도 근접할 정도의 'MVP 시즌'을 만들었다.
또 확실하게 자리를 꿰차지 못하던 이우성을 꾸준히 기용하며 믿음을 줬고, 젊은 포수 한준수를 김태군의 확실한 백업으로 안착시켰다.
아울러 외국인타자 소크라테스 브리토는 계속된 부진 속에서도 믿어준 덕에 살아날 수 있었고, 9번타자보다 1번타자를 선호하는 박찬호의 속내를 헤아린 것 역시 초보 사령탑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전문 파트가 아닌 투수 운용에서도 투수 코치들과의 협업을 통해 훌륭한 성과를 냈다. 특히 불펜진의 '3연투 금지'와 같은 원칙을 세워 선수들의 과부하를 막았고, 선발진의 연쇄 이탈 땐 황동하와 김도현 등 젊은 투수를 과감하게 기용해 공백을 메우기도 했다.
베테랑과의 소통도 이 감독이 가진 특장점이었다. 2017년 선수로 우승을 함께 했던 최형우(1983년생), 양현종(1988년생), 김선빈(1989년생) 등 투타의 핵심 선수들과 '형님-아우'와도 같은 친근한 관계를 이어가며 편안하게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했다.
마냥 친근하기만 한 사령탑도 아니었다. 간판타자인 김도영도, 외인 소크라테스도 다소 느슨한 플레이를 할 때면 질책성 교체로 선수단 전체에 메시지를 줬다.
'대투수' 양현종이 6점 차의 리드를 안고도 흔 흔들리자 5회 2사 후 교체를 결단한 장면 역시 인상적이었다. 앞서 14-1까지 앞서던 경기에서 추격을 허용해 15-15 무승부가 됐던 아쉬움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결단을 내린 이후엔 더그아웃에 돌아온 양현종을 뒤에서 끌어안으며 달래는 모습도 보였다. 이 감독의 강단과 친근함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처음 경험하는 '단기전' 한국시리즈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비로 멈췄다 재개된 1차전에선 6회 무사 1,2루 위기에서 '가장 강한 투수' 전상현을 내 위기를 막은 뒤 경기를 뒤집었고, 4차전에선 1차전에 막혔던 원태인을 완벽 공략하며 승기를 잡았다.
우승을 확정한 최종 5차전에서도 양현종이 흔들리자 3회에 교체하는 강수를 띄웠다. 타선이 충분히 따라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 '신예' 김도현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판단이었고 이는 제대로 적중했다.
젊은 감독, 예상치 못했던 시작, 시즌 중엔 잦은 부상 악재까지. 쉽지 않은 '데뷔 시즌'이었지만, 이범호 감독은 끝내 최고의 자리에서 활짝 웃었다. 초보답지 않은 모습으로 '성장'을 마다하지 않은 사령탑에겐 '우승 감독' 타이틀은 합당했다.
starburyn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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