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라는 낙인…한화를 떠난 후 재기 어려운 감독들 [야구오디세이]
2010년 이후 감독 5명 중 4명, 임기 못 채우고 퇴진
KBO리그 다른 팀 감독으로 재취업도 어려워
- 이상철 기자
(서울=뉴스1) 이상철 기자 = "프로야구 개막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역 시절 때는 매번 4~5선발이었기에 개막 엔트리에 한 번도 든 적이 없었다."
지난 3월 2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올 시즌 개막전을 앞두고 최원호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은 설레는 마음을 밝히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렇게 밝은 미소를 짓던 최 감독은 두 달 뒤 한화 벤치를 떠났다.
한화 구단은 27일 시즌 개막 후 51경기를 소화한 가운데 사령탑 교체를 발표했다. 최 감독이 23일 LG 트윈스전을 마친 뒤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고, 26일 사표가 수리됐다.
구단에 따르면 최 감독의 퇴진은 갑작스럽게 정해진 일이 아니다. 최 감독은 시즌 초반 1위를 질주하다가 성적이 곤두박질을 치던 4월 말부터 자리에서 물러날 뜻을 내비쳤고, 결국 지난해 5월 11일 카를로스 수베로 전 감독의 후임으로 임명된 지 1년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한화는 다시 한번 '감독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특히 최근 들어 감독 교체 횟수가 빈번했고, 대다수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2010년부터 15시즌 동안 독수리 군단을 이끈 한대화, 김응용, 김성근, 한용덕, 수베로, 최원호 중 김응용 전 감독만 2년 임기를 채웠을 뿐이다. 나머지는 성적 부진 등을 이유로 해임되거나 자진 사퇴했다.
이 기간 한화의 성적도 신통치 않았다. 포스트시즌에 오른 것은 2018년, 딱 한 번뿐이며 두 번이나 3년 연속 최하위에 그쳤다.
누가 와도 성공의 열매를 따지 못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수없이 해낸 명장도 두 손을 들어야 했다. 메이저리그(MLB)에서 잔뼈가 굵은 외국인 사령탑은 물론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지도자에게 지휘봉을 맡겨도 독수리의 반등은 없었다.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던 노감독, 정식 사령탑으로 첫발을 뗀 초보 감독 모두 한화가 기회의 땅이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특히 한화 사령탑은 감독 생명과도 직결됐다. '실패한' 지도자라는 꼬리표가 남았고, 재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최 감독에 앞서 한화 지휘봉을 12명의 정식 감독 중 한화를 떠난 뒤 KBO리그의 다른 팀을 맡은 이는 배성서, 강병철, 이광환 등 3명밖에 없다. 히어로즈가 창단 첫 시즌인 2008년 이광환 전 감독과 1년 동행한 것을 끝으로 그 명맥도 끝났다.
감독 후보군이 넉넉하지 않아 돌려막기가 있었던 시절을 감안한다면 2010년 이후 '한화 감독 출신'은 다른 구단에 별로 매력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KBO리그에서 감독 경력이 단절됐고, 다른 팀에서 코치로 활동하거나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운영위원 등으로 지냈다.
최 감독의 앞날은 전임 감독들과 다를까. 오랫동안 코치, 해설위원, 2군 감독으로 경험을 쌓은 그는 해박한 지식, 합리적이면서 뚝심 있는 철학으로 준비된 감독으로 기대를 모았다. 여기에 운동역학 박사학위를 취득, 대표적 공부하는 지도자로 명성을 떨쳤다.
2020년 말에는 조아제약 프로야구 대상 시상식에서 '지도자상'을 수상하는 등 지도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나이도 만 51세로 충분히 재기할 여지가 있다.
최 감독은 한화에서 감독대행과 정식 감독으로 재임하면서 181승 12무 234패를 기록했다. 딱히 내세울 만한 성적은 아니다. 한화에서의 실패가 오롯이 최 감독만의 책임은 아니지만 그 역시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또한 팬들을 끌어모으고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화제 되는 '스타 감독'도 아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다. 매년 우승이라는 성공은 단 한 명의 감독만 쟁취할 수 있다. 지난해 '우승 못 하는 감독'이라는 꼬리표가 있던 염경엽 감독은 3년 만에 현장으로 돌아와 LG 트윈스의 29년 만에 우승 숙원을 풀었다. LG의 우승이 감동적이었던 것 염 감독의 이야기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화 감독 출신도 그런 인생 역전을 이룰 날이 언젠가는 올 수 있을까. 그전에, KBO리그에서 막힌 감독 재취업의 길부터 열어야 할 터다. 평생 야구를 놓지 않았던 최 감독은 어떤 모습으로 다시 야구팬 앞에 설까.
rok195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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