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으로 8⅔이닝 막고 승리한 LG…시리즈 변수로 떠오른 '불펜데이'[KS]
LG, 2차전 선발 최원태 무너졌으나 벌떼 구원으로 극복
투수 엔트리 폭넓게 활용…KT도 4차전 불펜데이 가능성
- 권혁준 기자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그간 '선발 싸움'은 단기전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꼽혔다. 기복이 있을 수밖에 없는 타격과 달리 투수력은 안정성을 담보한다. 그 중에서도 6~7이닝을 책임질 수 있는 준수한 선발투수를 여럿 보유한 팀은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밖에 없다.
KT 위즈가 플레이오프에서 NC 다이노스에서 '리버스 스윕'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윌리엄 쿠에바스, 웨스 벤자민, 고영표의 강력한 선발투수 3명의 힘이 컸다.
한국시리즈에서도 선발 싸움은 KT가 우위를 점한다는 것이 대다수 의견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LG는 정규시즌 사실상 1선발 노릇을 했던 외인 아담 플럿코가 시즌 막판 부상을 당한 뒤 회복하지 못해 일찌감치 짐을 쌌다. 또 다른 외인 케이시 켈리가 있지만 이를 받쳐줄 투수들이 KT의 2, 3선발보다는 다소 밀리는 것이 사실이었다.
2차전 LG 선발로 나온 최원태는 '우승 퍼즐'로 영입한 투수지만 정규시즌 성적이 9승7패 평균자책점 4.30에 그쳤다. KT의 5선발인 배제성(8승10패 평균자책점 4.49)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성적인데, 배제성은 올 포스트시즌에 한 번도 등판하지 않았다.
그래도 마땅한 대안이 없던 LG는 최원태를 2차전 선발로 내세웠는데, 그는 아웃카운트 한 개를 잡을 동안 4실점하며 무너졌다. 선발투수가 일찌감치 마운드를 내려갔기에 윌리엄 쿠에바스가 버틴 KT 쪽으로 무게가 크게 기울어보였다.
그런데 경기는 LG의 5-4 역전승이었다. 쿠에바스가 6이닝 2실점의 '퀄리티스타트'를 했음에도, 1회에 선발이 내려간 LG가 이겼다. 경기 막판 LG 타선의 저력이 돋보였지만, 그 이전에 선발투수의 조기 강판에도 8⅔이닝을 무실점으로 버텨낸 불펜의 힘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불펜데이'는 최근 메이저리그는 물론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많이 쓰이는 단어다. 기존 선발투수의 부상이나 휴식 등으로 공백이 생겼을 때 불펜투수들만으로 경기를 치르는 것이다.
LG의 2차전은 애초 불펜데이를 계획한 것은 아니고 최원태의 부진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최원태가 내려간 이후 9회 마무리 고우석이 올라오기까지 이정용(1⅔이닝), 정우영(1⅓이닝), 김진성(⅔이닝), 백승현(⅔이닝), 유영찬(2⅓이닝), 함덕주(1이닝) 등 6명의 투수들이 버텨줬다. 투수 엔트리를 폭넓게 활용한 운영이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선발 싸움에서 밀리더라도 '불펜데이'를 치르며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LG는 KT의 손동현, 박영현 같은 강력한 불펜진을 보유하진 않았지만 준척급의 불펜투수들이 많다. 우완, 사이드암, 좌완 등 투수 유형도 다양해 상대 타자들을 좀 더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남은 시리즈에서도 켈리가 등판할 때를 제외하면 '불펜데이'로 승부를 볼 가능성이 적지 않다. 당장 10일 열리는 3차전에서도 임찬규가 KT 웨스 벤자민에 밀리는 형국인데, 이 경우 빠르게 불펜진을 투입해 2차전처럼 승부를 볼 수도 있다.
KT의 경우 선발투수 3인방에 불펜의 손동현, 박영현, 김재윤까지 6명의 투수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플레이오프에선 버텼지만 시리즈가 길어질 수록 주축 투수들의 피로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KT 역시 4차전에서는 '불펜데이'로 경기를 치를 가능성을 시사했다. 다만 LG처럼 많은 투수가 투입되는 형태가 아니라 정규시즌 선발 자원이던 엄상백과 배제성을 '1+1' 형식으로 붙일 가능성이 높다.
2차전에 손동현과 박영현이 모두 흔들렸지만 그럼에도 불펜 운용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LG처럼 '준척급 불펜'이 많지도 않은데다, 이강철 KT 감독이 이전까지 중용하지 않았던 투수들을 중요한 시점에 투입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LG가 14명, KT는 2명 적은 12명의 투수를 포함시킨 것만 봐도 엔트리 활용의 유연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불펜데이'로 시리즈 동률을 만든 LG는 향후 시리즈에서도 '불펜의 힘'으로 흐름을 가져올 수 있을까. 선발투수에서 열세를 보이는 팀이 우승을 차지하는 흔치 않은 '사건'이 벌어질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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