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위해 열심히 일한다고요?"…'육아랜서' 40대 아빠가 꿈꾸는 세상

[인터뷰]김기탁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
올해 '서울시 성평등상' 대상 수상

13일 오전 도봉구 가치자람사회적협동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김기탁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 //뉴스1 ⓒ News1 김정은 기자

(서울=뉴스1) 김정은 기자 =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면 정작 가족을 놓치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한 번 멀어진 가족과 다시 가까워지기란 매우 어렵죠."

2018년부터 약 6년간 '육아랜서'(육아+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김기탁(42)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의 말이다. 김 소장은 '치맛바람'과 '바짓바람'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꿈꾼다. 아빠들이 공동 육아 주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이유다.

김 소장은 이달 7일 올해 '서울시 성평등상'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저출생이 국가적 과제가 된 지금, 세 자녀를 둔 다둥이 아빠로서 남성 양육 콘텐츠를 제작해 양성 평등한 양육 문화 확산에 기여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가 찍은 아빠 육아 릴스는 누적 조회수 2000만 회를 넘겼다.

김 소장과 처음 인터뷰 일정을 맞춰볼 때부터 양육인의 포스가 물씬 풍겼다. 그는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난 오전 중 '반짝' 인터뷰가 가능하고, 조심스레 집 근처로 와줄 수 있느냐는 부탁을 건넸다.

김 소장은 누구나 그렇듯 처음엔 자신 역시 모든 게 서툰 초보 아빠였다는 고백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9살 연하인 아내에게 끈질긴 구애 끝 결혼에 골인했고, 2015년에 첫 아이를 얻었다. 귀하디귀한 생명의 탄생에 기쁨만이 가득할 줄 알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더욱 냉혹했다.

그는 "가게를 내고 싶어서 일을 배우겠다고 잠시 대구에서 지낼 때 아내랑 아이도 같이 갔다"며 "서울에서 나고 자란 아내가 대구라는 낯선 지역에서 혈혈단신으로 육아를 도맡다 보니까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한 생명이 움을 트는 동안 또 다른 생명이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밝고 긍정적이었던 김 소장의 아내는 아이를 홀로 키우며 점차 '회색 인간'으로 변해갔다. 그도 그럴 것이 출산과 육아로 말로만 듣던 '경단녀'가 되면서 우울감을 크게 느꼈다고 한다.

김 소장은 "아내랑 결혼할 때 아이를 3명 낳자고 했었는데 아내가 첫째를 낳더니 둘째를 못 갖겠다고 했다"며 "저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정작 가족과 보낼 시간이 부족했고, 가족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혼자만의 욕심을 채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김기탁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 인스타그램)

그래서 그는 '프리랜서'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가족과의 시간을 택한 대가는 혹독했다. 정기적인 수입이 없었던 만큼 신용카드 대금 독촉장을 받은 적이 있을 정도다. 김 소장은 가족과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우유·신문 배달이나 택배 등 파트 타임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유지했다.

김 소장은 "육아하면서 일자리를 구하는 게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는데, 그 와중에 제가 육아에 상당한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나 같은 초보 아빠들에게 조금 더 양육을 쉽게 알려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육아랜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육아랜서' 활동 기간이 길어질수록 '요즘 남편 없던 아빠'들의 등장이 체감된다는 그다. 예전엔 아빠 육아 강연에 엄마들이 대신 신청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젠 아빠들이 직접 신청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무뚝뚝하고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빠들이 자신은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행동에 나서고 있다.

그는 "요즘 아빠들을 개개인별로 보면 다들 가정을 생각하고 노력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업에서 그걸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며 "정부의 지원도 있겠지만 기업의 역할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육아에 더욱 열린 자세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아빠들이 육아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도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성별이 다른 딸아이를 키우는 아빠들의 고충이 크다고 했다. 김 소장 역시 발레 수업을 받는 둘째 딸의 환복을 위해 남자 탈의실에 들어갔다가 괜한 눈총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김 소장은 "아빠들이 2시간의 강연을 듣고도 시간이 짧았다면서 더 배우고 싶다고 아우성을 칠 때 뿌듯함을 느낀다"며 "양육을 아내와 함께하다 보니 부부 사이도 좋아져 둘째와 셋째가 자연스럽게 생겼고, 첫째 아이는 '저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말할 때 온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든다"고 웃어 보였다.

1derland@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