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경의 촉] "나는 여성 위한 불쏘시개…정치는 내 일 아냐"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경기대 교수 인터뷰
"여성 이슈에 좌우없다…안티그루밍법안도 꼭 필요"
- 김윤경 기자
(서울=뉴스1) 김윤경 기자 = 세상을 살면서 '회색'인 게 유리할 때가 많다고 느낀다. 그래, 너도 옳고, 너도 옳아. 그래그래 알겠어. 대충 중간쯤 서 있는 것처럼 굳이 나의 의견을 얘기하지 않는 것 말이다. 다툼을 유발하지 않기 위해. 소신이 강하거나 정의롭거나 하는 일은 아무래도 튄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모난 돌은 정 맞는다'는 말을 신봉하고 있는 것도 같다. '어느 편'인지를 가르고자 하는 심리도 강하다.
◇통합당 성폭력대책위 합류 이유는 "교육이 더 필요한 당"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경기대학교 대학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그런데 '정 맞을 일(말)'을 거침없이 한다. 그리고 누구의 편도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습관대로 평가하게 마련. 최근 미래통합당 성폭력대책특별위원회에 합류한 일도 그랬다. 본인은 이게 그렇게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지 몰랐다고 하지만 사회 정서가 그렇다. '어느 편' 사람인지를 가려 정체성을 부여하고 평가하려는.
"여성 이슈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 이후로 동력을 잃었어요. 그래서 나는 그걸 강화해야 하겠다 생각을 하던 참이었고 이때 제안이 온 거죠. 21대 국회 미래통합당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어요. 그래서 누가 전화를 했던 건지도 몰라요. 잠깐 고민했죠. 2~3분 정도. 이걸 해도 될까, 내가 당원이길 하나, 국회의원이길 하나, 아무것도 아닌데 내가 뭘 잘났다고 거부해, 나는 교육을 하는 사람이고 교육이 더 필요한 당이 어딜까 생각하니 비로소 수락을 하게 된 거죠. 이게 논란이 될 줄은 몰랐고 새삼 이렇게까지 시끄럽게 됐구나를 보며 놀랐죠."
그리고 자신은 누구의 편도 아니며 다만 피해자의 편이라고 했다. 많은 경우 여성인 피해자의 편.
"소신있게 저는 가는 겁니다. 여성들이 여성인 거지 '좌'이면서 여성이냐, '우'이면서 여성이냐 이게 뭐가 중요합니까. 저는 아무리 바람이 불고 파도가 쳐도 여성과 피해자를 위한 역할, 이 위치에서 별로 벗어날 것 같지 않아요. 저는 정치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 그러면서 피해자를 위한 입법 활동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기초연구나 상담, 조언, 자문 등을 통해 얼마든지 도울 생각이 있다고 한다. 피해자를 두고, 피해자를 위한 대책을 마련한다는데 진영논리를 찾는 것이 너무나 어이없다는 그다.
선출직이 아니라 임명직 고위 공무원을 하면 그런 입법 활동이 더 쉽지 않겠느냐고 물어도 답은 한결같다. 자신이 잘 하는 교육과 자문을 하면서 여성과 피해자 문제에 있어 불쏘시개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계획이라고 잘라 말한다.
다음은 이수정 교수와의 일문일답.
◇국회 입성 제안 수차례 받았지만…"입법은 내 일 아니다"
-미래통합당 성폭력대책특별위원회 합류하기로 했을 때 이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하셨는지요.
▶ 전혀요. 내가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내 매일은 똑같아요. 연구하고 자문하고. 인신공격도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하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정정도 필요없어요. 대응하지 않기로 했죠. 다만 이런 생각은 했어요. 아, 구시대적, 잘못된 규범엔 좌우가 없구나. 저는 진영논리를 너무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억울한 건 없고 단지 어이없다 할까 그랬습니다.
-이런 반응에 대한 실망, 혹은 민주당 쪽에서 제안이 먼저 오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은 없었습니까?
▶ 실망이라는 걸 어디서 더 하겠어요. 관계가 없는 쪽? 아니면 관계가 있는 쪽. 관계가 있는 쪽에 대해 더 실망을 할 수 있긴 하겠죠. 그렇지만 여성 이슈가 동력을 잃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더 강했어요.
-교육은 언제부터 어떻게 하십니까.
▶ 교육은 원래 빨리 해달라고 했는데 지원자가 많아 별도의 공간도 마련해야 한다고 해서 오는 27일에 처음으로 하기로 했어요. 일단 이번 주에 사전 미팅을 갖는데 만나보면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알게 되겠죠.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몰라요. 교육을 한다는 것 외엔. 그리고 제가 위원회 합류한다는 얘긴 제 입으로 하지도 않았어요. 아마 국회 출입기자들이 알고 기사를 썼겠죠.
-그래도 오랜 시간 추진해 오신 '스토킹방지법' 등을 입법화하기 위해 입법 과정을 직접 하는 국회의원이 되고 싶진 않으신가요.
▶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실 21대 국회 시작하기 전에 제안은 적지 않게 받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법을 잘 만들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긴 했는데 법학이 전공도 아니고 입법은 법을 잘 알고 해야 한다고 생각해 거절했습니다. 내가 잘 하는 건 분석하고 진단하고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죠. 이번에 통합당 교육을 하게 된 것도 국회 차원의 성폭력대책특별위원회가 생겼으면 하는 희망을 갖고 들어갑니다.
-지금 국회의원들이 모두 법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지 않습니까.
▶ 나는 법을 잘 모르면서 입법 활동을 한다는 게 불편해요. 나는 입법을 위한 기초연구는 얼마든지 할 수 있고 피해자 만나 상담해 달라고 하면 그것도 얼마든지 할 거예요. 지금도 법무부와 20년째 함께 일을 합니다. 그런 일은 잘 할 수 있습니다. 입법을 잘 하려면 내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요. 내가 잘 하지 못할 일을 한다는 건 불편해요.
-그렇다면 임명직은 어떠십니까. 이를테면 여성가족부 장관이랄지.
▶ 마찬가지예요. 정부에 참여한다는 생각도 완벽하게 없습니다.
◇지자체장들 성비위, 조직권력·가부장 사고가 만든 비극
- 고 박 전 시장 문제 터지고 여당인 지방자치단체장들 문제가 왜 이렇게 벌어지는 걸까 일종의 의심 같은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 안희정 전 충남지사 등 연이어 성 비위 문제가 터진 것이었구요.
▶ 지자체장들은 그들 왕국의 제왕이죠. 안희정 전 지사 사건만 해도 그렇습니다. 출장 와 있는데 호텔에서 그것도 한밤중에 수행비서에게 "담배 사오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비서들은 "노"라고 말할 수가 없을 겁니다. 나 같으면 "미쳤냐"라고 하겠지만요. 그렇지만 수행비서는 못 합니다. 이걸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니까요. 자신의 생존이 걸린 문제까지 생각하게 되구요. 그래서 직업을 놓지 못한 채 당하고도 상황이 나아질까 보게 되고 그러다 사실을 까발리게 되면 밥줄이 끊어지죠. 지금 보세요. 재취업도 안 되고 있잖아요.
-지자체 안에서 가스라이팅(Gaslighting: 상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상대의 행동을 통제하고 조정하는 것)이 된다고 보시는 건가요?
▶그렇게 볼 수 있겠죠. 지자체장의 방패막이 같은 사람들이 있을 거고, 그 밑에는 소위 '늘공'들이 있고 그들의 비호 속에서 그 안에서 있었던 일은 밖에서 알 수가 없게 되겠죠. 그런 권력구조와 함께 우리나라에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는 가부장적 사고, 이런 것들이 융합되어서 결국이 여성이 한 번도 인간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자체장, 고위 공직자라고 해서 도덕성을 갖춰야 하느냐. 그것보다는 인간에 대한 속성과 권력구조가 문제인 겁니다. 이게 문제고 제발 여성을 인간으로 봐달라 이런 얘길 하고 싶네요. 과거부터 지금까지 달라진 게 별로 없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아무리 바람이 불고 파도가 쳐도 이 역할 이 위치에서 별로 벗어날 것 같지 않고 여성을 위해 피해자를 위한 불쏘시개가 될 겁니다.
- 안희정 사건의 피해자 김지은씨는 혹시 만나보셨습니까.
▶ 네, 그 일 터지자마자 만나봤습니다. 지원단이 있었고 거기에 합류했던 거죠.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도 있었고 많은 여성학자들도 와서 논의를 했습니다. 모여서 어떻게 하면 김지은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 이 재판을 끝까지 참아낼 거냐 이런 논의들을 했고 그리고 나서 이 팀들이 진술의견서를 쓰기도 했습니다. 지금 흘러가는 것을 보면 외로운 투쟁이지만 그래서 누군가는 그를 도와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심플하게 그렇게 하기로 한 겁니다.
- 박 전 시장 피해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데요.
▶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김지은씨처럼 완전히 사회적으로 매장될 겁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가해자가 사망까지 했고. 자신의 선택(사건 고소)에 대해 섣부른 게 아니었나 책임감도 느낄 거구요.
◇일상에선 아내·엄마 역할 충실…젊은 페미니스트와는 다른 결
</strong>
- 그렇다면 사법 혹은 형사 체계 안에 있는 사람들의 피해자 감수성은 어떻다고 보십니까.
▶ 감수성이 별로 없죠. 그나마 피크를 이뤘을 때가 '조두순 사건'(지난 2008년 12월11일 경기도 안산에서 등교 중이던 나영이(가명·당시 8세)를 조두순이 납치한 뒤 성폭행한 사건) 때였던 것 같아요. 국가가 이 사건 피해자와 가족에게 13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잖아요. 아동 성폭행사건 조사 과정에서 미흡한 조치로 발생한 2차 피해에 대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이었죠. 해결 방법은 끊임없는 교육입니다. 그래서 교육을 하러 간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나에게 자꾸 뭐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웃음)
- 여성 피해자에 대한 생각이 강해진 건 언제부터입니까.
▶ 제 스스로가 여성이기도 하지만 범죄심리학자로 20년 살면서 '말 없이 죽어있는 여성 시신'을 너무 많이 봤어요. 그들이 왜 할 말이 없겠습니까. 억울함을 호소할 수도 진실을 얘기할 수도 없는 거죠. 그러다가 그들은 잊힙니다. 너무 안타까운 거죠.
-본인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합니까.
▶ 나는 어떤 면에선 지금 젊은이들과 같은 의미의 페미니스트일 수가 없어요. 나는 386세대고 가부장적 사고를 벗어날 수가 없다는 면에서요. 저 또한 엄마로서 아내로서 전통적인 역할에 충실했었구요. 다행이었던 건 내가 내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이고 그것이 범죄심리학이었다는 거죠. 여성으로서 여성을 위한 일을 한다는 소신은 있습니다.
-시신을 그렇게 많이 봐야 하고 끔찍한 범죄를 연구해야 하는 직업이 고되진 않습니까.
▶ 고통이 왜 없겠어요. 그렇지만 나는 그 후유증을 생산적으로 푼 거죠. 그냥 우울증에 걸려버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연구를 더 열심히 하고 하는 식으로.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은?
▶ 저는 일단 범죄심리학자로서 정년까지 열심히 살 겁니다. 언제나 매일매일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여성 범죄심리학자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그들은 공감 능력이 뛰어납니다. 그러니까 화성연쇄살인 행각을 해온 이춘재의 범행도 자백을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이죠.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 문제도 꼭 근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위해 안티그루밍 법안(Anti-grooming law: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시도하거나 만나기만 해도 형사처벌하는 내용의 법)을 꼭 만들어 통과시키고 싶어요.
s914@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