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정부의 때아닌 '완벽주의'…21대 국회 연금개혁에 힘 보태야

맹탕개혁안 제시했던 정부, 국회 논의 마음에 안 든다고 개혁 미루려 해
개혁 늦어질 수록 사회적 부담 크게 늘어…보험료율 인상부터 달성해야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민원실에서 직원이 이동하고 있다. 2024.4.24/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서울=뉴스1) 김유승 기자 = 21대 국회가 임기 종료를 앞둔 가운데 정부가 22대 국회로 연금 개혁을 넘겨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21대 국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조급하게 하기보다 22대 국회에 넘겨 충실하게 논의하는 것이 맞다"고 했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같은 취지로 발언했다.

윤 대통령과 조 장관 등 고위급 인사의 발언으로 21대 국회의 개혁안 마련 동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앞서 여야는 시민대표단 공론화 과정에서 나온 안을 토대로 보험료율을 13%까지 올리는 성과를 거두며 소득대체율 합의만 남겨둔 상황이었다. 보건복지부 또한 연금개혁 추진단을 발족하며 막판 합의에 힘을 보태려 했지만 결국 무색하게 됐다.

정부의 입장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연금 개혁 공론화 과정에선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등 모수개혁에 치중해 논의가 이뤄졌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관계 설정 등 공적연금을 제대로 바꾸기 위한 주제는 여야가 합의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아, 이대로 합의안이 마련되면 추가 개혁이 필요하다. 정부가 개혁 의지가 없다기보다는 기왕 하는 연금 개혁을 제대로 완수하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완벽주의에 갇혀 연금 개혁의 시급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저출산 고령화로 미래에 보험료를 낼 사람은 줄어드는데 연금을 탈 사람은 급격히 늘면서 현행 체계가 지속되면 현재 1000조 원 넘게 쌓인 국민연금 기금은 2055년 바닥을 보일 예정이다. 이때 미래세대가 내야 하는 보험료율은 소득의 26.1%에 달하며 2078년에는 35%에 육박한다.

전문가들은 연금 개혁이 늦춰질수록 우리 사회의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지적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금 개혁이 1년 지체될 때마다 추가 부담액이 수십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김상균 공론화위원장은 개혁이 1년 늦어질 때마다 추가로 올려야 하는 보험료율이 0.5%포인트라고 밝혔다.

정부와 여당은 22대 국회에서 구조개혁을 포함한 완전한 연금 개혁을 이루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26년간 우리 사회가 보험료율을 단 한 차례도 올리지 못했을 정도로 연금 개혁이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개혁 불씨가 이어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22대 국회에서 연금 개혁을 이어가려면 연금특별위원회 구성부터 다시 해야 하며, 여야가 정쟁과 국정감사에 매몰되면 올해 안에 개혁안을 마련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내년 이후엔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을 앞두고 국회가 표를 의식하면 연금 개혁이 좌초될 수 있다.

무엇보다 지난해 총선 표를 의식해 연금 개혁을 국회로 떠넘겼던 정부가 이제 와서 논의가 불충분하다며 개혁을 미루자고 고집하는 것은 명분이 부족하다. 정부의 주장이 힘을 얻으려면 지난해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에서 맹탕 개혁안을 보일 게 아니라 처음부터 구조개혁 방안까지 담은 제대로 된 개혁안을 선보였어야 했다. 공론화 과정을 지켜보자며 뒤로 숨더니, 이제 와서 22대 국회로 개혁 과제를 넘기자는 건 또다시 연금 개혁을 어렵게 할 수 있는 무책임한 태도다.

정부는 연금 개혁을 22대 국회로 넘기자는 입장을 철회하고, 21대 국회가 보험료율 인상안이라도 통과시킬 수 있도록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여야가 의견 일치를 본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4% 안을 적용하면 기금 고갈 시점은 2064년으로 기존보다 9년 늦출 수 있으며 누적적자도 현재보다 3738조 원 줄어든다고 한다. 이번에 마련된 개혁안이 불완전하더라도 또 언제 가능한 합의안일지 모르는 만큼 일단 통과에 힘을 보태는 것이 순리다. 구조개혁은 당장 가능한 모수개혁을 이룬 뒤 정부가 주도해서 다시 논의해도 늦지 않다.

김유승 뉴스1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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